옥천면 옥천리 면사무소 앞에는 마을 사람들이 ‘허씨 며느리 비’라고 부르는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습니다. 옛날 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이 비석은 만들어진 형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비를 세운 지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비문은 비와 바람에 의해 마모되어 내용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 […]
카테고리: 양평 관련 설화
팔선녀 골 전설
개군면 석장리에는 팔선녀(八仙女)가 목욕하던 곳이라 ‘팔선녀골’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옛날에 이 마을 뒷산에는 연못이 세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크고 다른 두 개는 작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산세가 수려하고, 연못의 물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했던지 하늘나라까지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여덟 명의 선녀가 인간세상을 구경하러 내려왔다가 이 연못에 들러, 세 연못에 나누어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고 […]
풍류산 이야기
청운면 도원리에 있는 풍류산은 산에 불이 나게 되면 아무리 화창한 날이라도 갑자기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내려 산불을 꺼버린다고 합니다. 이 산에서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전쟁이 있었는데 의병들이 산 위에서 바윗돌을 굴려 왜군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또 산줄기에는 나라를 지켜주는 장수가 나타난다는 혈맥이 있다고 하여 겁을 먹은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맥을 끊기 위해서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고 […]
함왕굴 설화
옥천면 용천리에는 ‘함왕굴’이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와 관련해서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씨족사회였던 시기에 사나사(舍那寺) 계곡에는 함(咸)이라는 씨족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큰 나라를 형성하여 살아가길 열망하였으나 무리 안에는 그들을 잘 이끌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잘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 지도자를 보내달라고 […]
물레울 김생원 이야기
조선 정조 재위 시절에 정배리 깊은 산마루에 김생원이란 사람이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멀지 않은 석산리 물레울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물레울 김생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물레울 김생원은 힘이 천하장사인데다가 담이 커서 마을과 떨어진 깊은 산마루에 집을 짓고 아내와 단둘이서 살면서 종종 마을을 오가면서 지냈습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김생원이 마을로 내려가려는데 아내가 김생원을 […]
백백교 이야기
백백교(白白敎)는 1923년에 우광현과 전용해가 세운 신종교로 단월면 향소리 산1012번지를 본거지로 한 사교집단이다. 원래 이 교단은 기존의 백도교(白道敎)라는 종교집단에서 나온 것으로 1919년에 백도교 교주 전정예가 죽자 우광현과 전용해가 그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암매장하였다. 그 후, 암매장한 사실이 탄로가 나자 교명을 백백교로 바꾸고 전용해를 천부(天父)의 아들로 삼아 세상의 임박한 종말을 강조하며 피난처를 전국적으로 53개소나 설치했다. […]
보룡리 청룡에 관한 설화
단월면 보룡리에는 보산정(寶山亭)이란 정자가 있습니다. 옛날에 이 정자와 마주 보이는 곳에 깊은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 연못에는 청룡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연못에는 청룡이 살고 있었습니다. 청룡의 음덕 때문에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유하고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은 점점 욕심이 많아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괘일산 산신령이 […]
사나사의 내력
옛날 어느 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상좌승이 밥상을 들고 절 뒤에 있는 암자를 찾아가서 법사를 불렀습니다. “법사(法師)님, 진짓상 가져왔으니 문 좀 열어 주십시오” 그러자 방안에서 컬컬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네 이놈, 왜 자꾸 귀찮게 구느냐.” “법사님께서 곡기를 끊으신 지 벌써 열흘이 넘었사옵니다. 법사님보다도 저희들이 걱정이 되어 못 견딜 지경이오니, 어서 진짓상을 받으십시오.” “저런 주리를 […]
영화담 전설
옛날에 옥천면 옥천리에 영화담(映火潭)이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현재 이 연못은 없어지고 흙을 덮어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영화담은 이 마을의 유력 가문인 이참판 집에서 재산을 내어서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연못을 팠던 이유는 이 마을이 풍수적으로 불이 나는 형세라 해서 비보(裨補)차원에서 연못을 파서 마을에서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용문산을 비롯한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불꽃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