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청운면

현충탑

顯忠塔 소재지 : 청운면 용두리 산1임시   대 : 현대종   류 : 기념물<기타>   현충탑은 청운면 용두리의 남향한 구릉 상부에 세워져 있다.높이 106㎝의 백색화강암 기단위에 2단으로 단을 마련하고 높이 3.7m로 탑이 세워져 있다.너비는 하단이 148㎝이고, 두께는 28㎝이다.또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마련되어 있다.1950년 6 25사변 및 월남전으로 산화한 영령들의 애국충절을 기리고자 1962년 유족들의 뜻을 모아 東麓에 충혼각을 […]

가현리 굴참나무

 □ 소  재 지 : 청운면 가현1리 임야 429번지 □ 지정사항 : 지정번호 경기-양평-36, 지정일 1982. 10. 15      전면이 툭 터진 논밭과 마을의 경계부에 식재된 마을 읍수 안에 있는 이 나무는 주변의 비슷한 크기의 참나무들과 함께 넉넉한 마을 숲을 이루며 서 있다. 현재 주간의 손상이 심해 깊이 20cm의 긴 동공이 두 군데 나타났고 담쟁이덩굴이 […]

운용담 암각문

雲龍潭 岩刻文 소재지 : 청운면 신론리 산50임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각석   청운면 신론리 신론초등학교 건물에서 도원리 새마을 회관쪽으로 도로를 타고 약 500m 정도 진행하면 좌측으로 야산 절벽이 확인된다.암각문은 하천의 북쪽 절벽에 세로방향으로 ‘雲龍潭’이라 각자되어 있다.마을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예전에는 절벽 아래에 깊은 못이 있어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암각문 주변에는 양봉을 […]

이춘명 효자정문

(李春明 孝子旌門)  □ 소  재 지 : 청운면 갈운리 83 □ 시     대 : 조선 고종 29년(1892) 명정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14호      청운면소재지에서 횡성군 쪽으로 8km 정도 가다보면 갈운초등학교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250m 쯤 더 지난 곳에 갈운리 양지말이 있다. 이춘명 효자정문은 양지말의 서편 산록으로 마을과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

갈운리 유물산포지

葛雲里 遺物散布地 소재지 : 청운면 갈운리 937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유물산포지   용두리에서 횡성으로 넘어가는 도로변의 속칭 점골마을에 위치한다.6번도로에서 갈운교를 지나자마자 북쪽의 마을로 난 길을 타고 들어가 갈림길을 만나면 동쪽으로 뻗은 콘크리트포장도로를 타고 약 100m가량 가면 북쪽으로 구릉지를 개간하여 만든 밭이 펼쳐져 있고 밭둑 하단부에 민묘가 있다.유물은 민묘 주변과 북쪽의 경작지 일대에 백자편이 […]

이수번 묘

李守蕃 墓 소재지 : 청운면 다대리 산45-1임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조선민묘   44번 국도를 이용하여 청운면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용두 휴게소를 지나 우회전하여 오목동으로 진입한 후, 산허리에 나있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400m 정도 올라가면 좌측능선에 묘가 위치하고 있다.묘는 쌍분으로 봉분이 내려앉아 높이가 낮은 편이다.쌍분의 중심에 비좌를 갖춘 월두형의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신의 중간 부분이 […]

흥은위 정재화 묘

□ 소  재 지 : 청운면 비룡리 산53□ 시      대 : 조선시대□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15호      청운면소재지에서 6번 도로를 따라 홍천 방면으로 약 23km 가면 비룡교가 나온다. 이 비룡교를 지나 남쪽으로 난 마을도로를 따라 400m쯤 들어가면 도청마을에 이른다. 정재화의 묘는 이 마을의 북쪽에 접한 야산의 남쪽 구릉지에 있다.   흥은위(興恩慰) 정재화(鄭在和, 1754~1790)는 […]

의병장 김백선 묘

義兵將 金百先 墓 소재지 : 청운면 갈운리 산114임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조선민묘   김백선 묘는 갈운1리 마을의 동쪽 야산록에 위치한다.정부인 파평윤씨와의 합장묘이며 상석과 향로석, 망주석은 근래에 세운 것이다.1992년 묘의 우측에 후손들이 두 개의 비를 건립하였다.金百先( ~1896)은 경기도 양평 출신의 항일의병장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이춘영, 안승우 등과 함께 지평에서 항일의병에 가담하였다.유인석의 휘하에서 충주전투에 […]

최우석

(崔宇錫(友錫))      항일운동가. 최우석은 청운면 다대리 출신이다. 1907년 10월결 의병 정대무의 부하로 들어가 지평 및 홍천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수비대와 교전하였다. 1908년 2월 춘천에서 부하 30명을 모집하고 5월 23일 일본군과 교전하다 패주하였다. 9월 중순 일본수비대에 자수했다. 앞의 활동한 사실을 비추어 여주 검사국 및 법원에서 옥살이를 하였다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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