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광탄리

용문산지구 전투전적비

龍門山地區 戰鬪戰蹟碑 소재지 : 용문면 광탄리 175-8임시   대 : 현대종   류 : 기념물<기타>      택승정이 위치한 공원내에 연접하여 도로를 향하여 북서향하고 있다.   1951년 5월 용문산지구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 장병들이 중공군 제63국 예하 3개 사단과의 전투 중 산화한 전우들의 명복을 빌고 그들을 길이 추모하고자 1957년 7월 15일 제5사단에서 건립하였다.   비의 규모는 상부 절두된 높이 132㎝·하단 […]

광탄리 유물산포지3

廣灘里 遺物散布地3 소재지 : 용문면 광탄리 산15-1임시  대 : 고려시대종   류 : 유물산포지   광탄리 광탄교회가 위치한 주변의 산사면 일대에 해당한다.유적의 서쪽으로 南原梁氏谷山公派世居之地와 崇慕殿이 위치하며 중심능선의 정상부는 현재 소나무 묘목장으로 개간되어 있다.산사면 일대는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은 고려~조선시대의 자기편과 도기편이 넓은 범위에 높은 밀도로 산포되어 있다.유적의 전체적인 지형이 완만한 남사면을 이루고 있어 이와 관련된 […]

광탄리 유물산포지1

   이 유적은 용문면 광탄리 문화마을 뒤편 능선부에 형성된 유물산포지로 현재는 문화마을과 배후의 전원주택지 그리고 도로개설 등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마을에 접한 극히 작은 능선부에만 남아 있게 되었다. 토지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과정에서 발견되어 학계에 알려졌으며 조사 당시 이미 도로공사가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긴급한 시굴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유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편과 더불어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마제석부 ․ […]

광탄리 유물산포지2

   용문면 광탄리 문화마을 뒤편의 구릉부에 형성되었던 유적으로 지금은 도로개설로 거의 없어진 상태이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편과 함께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 부분 마연된 석부 등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반고리모양의 토기 손잡이가 발견되어 이 유적이 청동기시대 중에서도 조금 늦은 시기에 해당하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유중룡

(柳重龍, 1845~1929)      학자. 초명은 柳孟龍, 자는 子雲, 호는 强齋, 본관은 고흥이다.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서 통덕랑 桂陽 柳馥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화서 이항로, 중암 김평묵, 성재 유중교에게 수학하였다. 강재는 1891년(고종 28) 이전에 가족과 함께 용문면 광탄으로 이주하여 10여 년 간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강재는 1897년경 전라도 완주군 화평리로 이주하여 오부자댁에서 숙사로 있었다. 강재가 광탄에서 […]

양재은

(梁在殷, 1896~1937)     독립유공자. 자는 春卿, 본관은 남원, 화서학파이다. 1896년 9월 18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에서 용문의 부호라 할 수 있는 梁寅煥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 7월 13일 박명호 · 곽영숙 등이 용문면 천도교실에 모여 조국독립을 위하여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일에 대하여 찬동,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의 인장을 만들어 소지하고 군자금 1만원 모금을 목표로 […]

양헌수

(梁憲洙, 1816~1885)      조선조 무신. 화서 문인. 자는 敬甫, 호는 荷居, 시호는 忠莊, 본관은 남원이다. 1816년(순조 16) 용문면 광탄리에서 수봉관 梁鍾任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828년 13세에 화서 이항로를 찾아가 성리학을 배우고, 1848년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선전관직으로 관직에 오르게 된다.   1851년 참상관(참상관; 6품)으로 승진하면서 훈련판관, 경력, 첨정 등 무인의 요직을 거치게 되었다. 1854년 평안도 동부의 희천군수에 […]

양재익

(梁在翼, 1849~1920)     조선말 문신. 자는 雲擧, 본관은 남원, 증 규장각 직제학 有煥의 둘째 아들이다. 1849년(현종 15) 11월에 출생하여 1870년(고종 13) 금위초관이 되었다. 1881년 처음으로 출사하여 부장이 되고 다음 해에 사과가 되었다.   1883년(고종 20) 사헌부감찰, 1890년 직산현감, 내금위장 통정대부에 올랐다. 1906년(순조 10) 양근군수, 1907년 충청남도 관찰사, 재판소 판사, 세무감을 겸임하였다. 1908년 태극장을 받고 잠깐 […]

양재철

(梁在哲, 1882~1947)      자는 致文, 호는 隱圃, 본관은 남원, 日煥의 아들이다. 은포는 나면서부터 뛰어난 기질이 있어 어려서부터 행동과 도량이 탁월하며 말과 웃음이 정중하였다. 은포는 예규에 성취하여 종가가 쇠퇴하고 미미한데 한을 품고 조상과 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모친께서 오랜 지병이 있으나 가난 중에도 부모를 잘 섬기고 지극한 효성으로 옆에서 모시기를 7년 동안을 하루같이 하였다. 초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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