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오빈리

덕고동문 암각문

德高洞門 岩刻文 소재지 : 양평읍 오빈리 465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각석   ‘德高洞門’ 암각문은 오빈리 유적2에서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거리의 마을길 옆에 위치한다. 암각문 주변에는 큰 바위와 느티나무들이 어울어져 있어 예전에는 풍경이 수려하였다고 한다. 암각문의 아래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지만 중앙선 복선 전철화 공사로 인하여 주변 경관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평평한 바위의 북동쪽 […]

오빈리 유적1

梧賓里 遺蹟1 소재지 : 양평읍 오빈리 293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건물지      유적은 양평읍 오빈리 238-13번지 일대로 덕바위 마을의 입구에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위치한다. 중앙선 복선전철화 구간 문화유적 시굴조사를 통하여 건물지 3동이 확인되었다. 이중 3호 건물지는 8각 건물지로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조선시대의 기와편, 도기편, 분청사기편, 백자편 등이 출토 되었다. 현재 주택과 축사가 […]

죽산안씨묘하별업 암각문

竹山安氏墓下別業 岩刻文 소재지 : 양평읍 오빈리 471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각석      암각문은 오빈2리 오빈골 마을의 북쪽 산자락의 말단부에 위치한 바위에 새겨져 있다. 평평한 전면에 약 70×320cm의 크기로 구획하여 표면을 정면하고, 내부에 ‘竹山安氏墓下別業’이라 각자 하였다.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崇禎後癸未古阜李月三爲安綱書’라 새겨져 있다. 암각문 주변에는 묘비 2기, 망주석 한 쌍이 세워져 있다.

감호정지

(일명 오노정)鑑湖亭址 (一名 五老亭) 소재지 : 양평읍 오빈리 485 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건물지      감호정터는 양평읍 오빈리 덕구실 마을의 입구에 자리한 승리주유소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6번 국도에 연접하여 주변지대보다 약 3m 정도 높은 평탄한 대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소는 남한강변이 한눈에 조망된다. 다섯 명의 노인이 감호정에서 풍류를 즐겼다 하여 […]

오빈리 유적3

梧濱里 遺蹟3 소재지 : 양평읍 오빈리 253-15답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건물지   오빈리 유적 1에서 동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민가 사이에 위치한다.중앙선 복선전철화 구간 문화유적 시굴조사에서 건물지 1동과 원형수혈유구 3기가 조사되었다.건물지에서 조선시대 후기에 속하는 기와편, 백자편, 도기편 등이 출토되었고, 수혈유구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현재 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많은 民家들이 들어서 있다.북쪽의 야산 […]

덕구실 나루터

소재지 : 양평읍 오빈리 414-4천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도진      덕구실 나루터는 감호정지에서 강변쪽으로 약 50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지역주민들의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쌍용스키장’이 들어서 있어 수상스키 등의 레저활동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오빈리 유적2

梧賓里 遺蹟2 소재지 : 양평읍 오빈리 291답시대 : 청동기시대종류 : 고인돌      오빈리 유적 2는 양평읍 오빈리 290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중앙선 복선전철화 구간 문화유적 시굴조사에서 고인돌 2기가 조사되었다. 1호 고인돌 개석(298×120×57cm)의 평면형태는 菱形이다. 서쪽으로 약 2m 떨어진 거리에 2호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 개석 주변에는 묘역의 범위를 나타내는 할석이 깔려 있었으며 북쪽에 연접하여 심하게 교란된 […]

오빈리 유적

   이 유적은 남한강 북안의 양평읍 오빈리에 위치한 구석기 유물산포지로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7점의 구석기를 발견하여 알려졌다. 유적의 배후에는 오빈리 일대를 동-서로 가로막고 서 있는 해발 218m의 남산이 솟아 있다. 유물산포지는 이 남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나온 가지능선상의 경작지에 형성되어 있다.   강원대학교에서 실시한 조사는 지표상에 나타난 유물을 중심으로 한 지표조사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층위를 통해 문화적인 현상을 […]

오빈리 유물산포지

   서울에서 양평읍내로 진입하기 전 남한강에 연접하여 있는 소규모 중지도에 형성된 유물산포지인데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이다.   과거 팔당댐 건설 전에는 강변의 충적대지였으나 수위 상승과 더불어 섬처럼 떨어진 지역으로 섬의 북쪽부분 경작지에서 약간의 원삼국시대 유물이 채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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