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 재 지 : 양평읍 양근7리□ 시 대 : 조선□ 종 류 : 나루터 양근 나루터는 양평읍 양근7리(척미)와 강상면(진변)사이에 강을 건너다니는 교통수단으로 나룻배를 이용하였는데 양근쪽을 양근나루라 하였으며 1971년 4월에 양평~강상간 대교가 세워져 나루터는 흔적만 남아있다. 이 나루터를 거쳐 갈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나 있으며, 입구에는 비가 세워져 있다. 비는 방형의 백색화강암 대석에 […]
카테고리: 양근리
양근리 느티나무
□ 소 재 지 : 양평읍 양근2리 대 279-2번지 □ 지정사항 : 지정번호 경기-양평-4, 지정일 1982. 10. 15 양평경찰서 관내에 있는 이 나무는 대대적인 외과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수세는 약하여 가지와 잎의 발달이 거의 없다. 주간의 높이 2.5m 부위에서 두 갈래 줄기로 갈라졌는데 그 중 한 줄기는 상단이 없으며 주간에 울퉁불퉁한 옹이가 발생되어 있어 수피의 […]
영호정
(暎湖亭) □ 소 재 지 : 양평읍 양근리 산40-2 □ 시 대 : 조선시대(영호대), 1930년, 1991년 재건 양평읍 소재지에서 강변도로를 따라 여주 방향으로 1km 정도 가다보면 양평소방서가 나온다. 이 소방서 오른쪽으로 난 갈산공원 진입로를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영호정이 있다. 영호정 바로 옆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정자에 오르면 양근나루터가 한 눈에 보인다. 『양근읍지(楊根邑誌)』「누대정관(樓臺亭觀)」(1899) 조에 의하면 […]
양평군수 이병제 영세불망비
楊平郡守 李秉悌 永世不忘碑 소재지 : 양평읍 양근리 234시 대 : 조선종 류 : 선정비 이병제 영세불망비는 양평읍사무소 정문 오른쪽에 자리한다.불망비는 비신의 윗면이 둥근 원수형의 형태이다.2면비로 전면과 측면에 명문이 있다.비신 전면에는 ‘行郡守李侯秉悌淸德愛民永世不忘碑’라 새겼고, 측면에는 ‘同治十一年壬申十月日邑內面立’이라 새겨 고종 9년(1872)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비좌는 방부의 형태이고, 윗면에는 복련으로 장식했다.비석의 크기는 총고 158㎝, 비신 높이 141㎝, 너비 56㎝, […]
양근리 선사유적
楊根里 先史遺蹟 소재지 : 양평읍 양근리 493시대 : 청동기시대종류 : 주거지 양근리 선사유적은 양평교육청 서편의 민가와 연립주택 사이에 형성된 유물산포지이다. 원래의 유적은 양근리 일대 전체에 걸쳐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각종 토목공사가 활발히 진행되어 원지형이 많이 변경되었으며, 특히 팔당댐의 건설로 인하여 대부분 수몰된 상태이다. 1972년 팔당댐 수몰지구에 대한 구제발굴을 실시하여 청동기~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
양근리 유물산포지1
양평읍 양근리의 남한강변 일대에 형성된 유적으로 중심부는 민가와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매몰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가 주변의 밭에서 약간의 석기류와 함께 원삼국시대의 연질 타날문토기 및 경질무문토기 등이 지표채집되고 있다.
한봉철
(韓奉喆, 1897- ?) 독립유공자. 갈산면(양평읍) 양근리 154번지 출신이다. 농업에 종사하다 22세 나이로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3월 23-24일 양평일대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여 한창호, 김경성, 서상석, 김석봉과 함께 조선독립시위운동을 활약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마침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의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또한 독립군과 만주, 노령지역에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한때는 ‘고려송산청년회’등에 가입하고 독립군으로 활동해온 바 있다. 그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가명으로 사용한 […]
양근리 유물산포지2
양평읍 양근리의 남한강 북안 강변 축적지에 형성된 유적이다. 현재 양평군청을 비롯하여 양평교육청과 민가들이 들어서 있으나 이러한 건조물들이 축조되지 않은 공터에서는 무문토기와 마제석기 등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강변을 따라 채집되고 있다. 이 유적은 1972년 팔당댐 건설 당시 각종 선사시대 유물이 뒤섞여 있는 유물 포함층이 확인된 지역이지만 이후 별다른 조사 없이 방치되어 왔으며 호안의 제방공사와 도로건설 등으로 […]
한창호
(韓昌鎬, 1896- ?) 항일운동자. 갈산면(양평읍) 양근리 427의 출신이다. 그는 작업이 자전거 수리업이다. 한창호는 23세의 나이로 1919년 3월 23, 4일에 양평일원에 장날마다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한 시기에 합세하여 김경성, 서상석, 김석봉, 한봉철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지 시위운동을 주도하고, 군중들과 국난을 회복코자 독립만세 시위하다가 헌병대 분견소에 끌려갔다. 이로 인해 경성지방법원의 징역 10월에 처하여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