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신원리

몽양 여운형선생 생가터

夢陽 呂運亨先生 生家址 소재지 : 양서면 신원리시   대 : 현대종   류 : 건물지      신원역에서 묘곡마을로 약 15분 정도 가다보면 오른편에 야트막한 야산 하나가 나오는데 이곳이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곳이다.   생가 앞에는 최근에 세운 「몽양여운형선생생가지비문」이 세워져 있다.   현재 생가터는 평탄한 대지로 남아있으며 숲으로 우거져 있다.   夢陽 여운형(1886~1947)은 독립운동가, 정치가였다.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

신원리 성지

□ 소 재 지 : 양서면 신원리 부용산 정상□ 시    대 : 삼국시대    신원리 성지는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의 해발 365.9cm인 부용산(芙蓉山)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테뫼식의 석축산성이다. 부용산은 한강의 북쪽으로 강에 면해 있는 산으로서 강을 따라 중앙선 철도와 6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남쪽에 있는 검단산과 마주보고 있다.   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각 방면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여러 […]

신원리 유적

新院里 遺蹟 소재지 : 양서면 신원리 555-7답시대 : 청동기종류 : 고인돌   6번국도 양평방면에서 부용사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소로길로 진입하여 들어서면 신원리마을이 확인된다.유적은 마을 서쪽에 위치한 부용산(芙蓉山,362.8m)의 동남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경기대학교 박물관에서 중앙선 복선전철화 구간에 대한 문화유적 시굴조사를 실시하여 서로 연접한 3개의 지점에서 건물지 2동, 고인돌 2기, 추정 고인돌, 구상유구, 적석유구, 수혈유구 각 1기씩을 조사하였다.

여운홍

(呂運弘, 1891~1973)      정치가. 자는 華叔, 본관은 함양, 1891년 양서면 신원리 묘곡에서 呂鼎鉉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1918년 미국 오하이오주 우스터 대학을 졸업하고,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의정원 의원이 되었으며, 그 해 파리평화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20년 상하이의 인성학교 교장으로 재직했었다.   귀국하여, 1922~1925년 보성전문학교의 영문학 교수로 있었다. 1946년 사민당을 창당하여 당수가 되고, 근로인민당에 가입, 간부가 되기도 […]

여운긍

(呂運兢, 1894~?)      독립운동자. 여운긍은 양평 양서면 신원리 273의 출신이다. 그는 당시 25세의 나이로 1919년 2월 13일 조선독립운동 발기 취지문을 작성하기 위하여 최광석을 시켜서 면사무소 등사기를 빌려오게 하여 인쇄를 하고 2월 하순에 양평군 내 11개 면사무소 면장에게 보냈다.   그 후 최대현 · 윤기영 · 이보원 등과 강하면사무소 앞에서 3월 31일 군중 300여 명과 함께 […]

여운형

(呂運亨, 1886~1947)      독립유공자. 정치가. 호는 夢陽, 본관은 함양, 呂鼎鉉의 첫째 아들로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서 출생했다. 우무학당 등에서 한학을 공부한 후 1907년 고향집에 광동학교를 세우고 신교육에 헌신했다. 그리고 강릉에 초당의숙을 세워 민족의식을 초취하던 중 국권이 피탈되고 학교가 폐쇄되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선교사 클라크를 따라 서간도의 新興武官學校를 견학하며 국외에서의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교를 중퇴, 1913년 중국으로 […]

여광현

(呂光鉉, 1885~1962)      독립유공자. 자는 周顯, 본관은 함양, 여규덕(呂圭德)의 둘째 아들이다. 여광현은 양서면 신원리 496의 출신이다. 당시 34세의 나이로 1919년 3월 31일 강상면과 4월 3일 고읍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가 광무황제의 승하를 당하여 망국의 통한을 가누지 못하고 있던 중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최대현 · 이보원 · 신우균 […]

여규덕

(呂圭德, 1846~1902)      천도교인. 본관은 함양, 양서면 新阮里 묘곡에서 呂長燮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여규덕은 천도교를 창건할 때에 교조 崔時亨, 간부 김연국 · 손병희 · 박인호 등 다섯 사람과 함께 핵심간부로 활동하였다.  『천도교창건사』에는 포덕22년(1881) 辛巳 六月 신사(최시형)은 단양군 남면 천동의 여규덕 집에 개간소를 개설하고 朝鮮文歌詞 여덟 편을 口誦하고 받아 적어서 간행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龍譚遺詞」라고 […]

박경인

(朴景禋, 1661~?)       밀성박씨 입향조. 본관은 밀성, 군의의 아들로 춘천시 남면 박암리에서 양서면 신원리 풀무골로 이주 정착하여 자손이 세거하고 있다. 묘는 신원리 풀무골에 있다. (양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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