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덕촌리

덕촌리 장승

德村里 장승 소재지 : 용문면 덕촌리 33시   대 : 근대종   류 : 공예   양평읍에서 용문사 관광지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오거리가 확인된다.장승은 오거리 우측의 도로 옆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이 양립해 있다.좌측에 조그만 정자가 있으며 주변지역에는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장승 뒤로 낮은 구릉이 이어져 있다.운계 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3일 밤 12시경 마을 입구에 있는 […]

평양조씨세장동구 암각문

平壤趙氏世藏洞口 岩刻文 소재지 : 용문면 덕촌리 산144임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각석      용문면 덕촌리 용문 청소년 수련원에서 도로를 따라 세심정 방향으로 약 200m 정도 진행하면 좌측편에 ‘平壤趙氏世藏洞口’라고 각자되어 있는 큰 바위가 확인된다.   글자 내부는 흰색 페인트칠을 한 상태이다.

조욱선생 묘 및 묘갈

□ 소  재 지 : 용문면 덕촌리 산7□ 시      대 : 조선 영조 21년(1745) 건립□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26호      용문면소재지에서 6번 국도를 따라 1.3km 정도 가면 용문교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난 마을도로를 따라 2.8km 정도 들어가면 덕촌리 퇴촌마을에 이른다. 조욱의 묘와 묘갈(墓碣)은 이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야산의 남쪽 […]

조 욱

(趙昱, 1498-1557)    유학자. 자는 景陽, 호는 龍門 ․ 眞齊, 시호는 文康, 본관은 평양, 판관 趙守의 아들이다. 1516년(중종 11)에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조광조, 김식을 사사하면서 학문연마에 힘썼다. 기묘사화 때 두 스승이 연루되었으나 연소하다고 하여 화를 면하였다.   그 뒤에 형인 趙晟과 식녕지역에 집을 짓고 학문을 강론하며 지냈는데, 세인들은 그들을 정호, 정이 형제에 비겨 […]

조형생

(趙亨生, 1564- ?)    무신. 자는 達可, 호는 遯谷, 조 욱(趙昱)의 손자다. 1602년(선조 35) 사마시에 합격하고 선비들의 천거로 사재감 주부에 제수되고 1624년 이괄난 때에 공조좌랑으로 어가를 호위하였다. 1654년(효종 5) 예산현감으로 있다가 3년만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의리를 중하게 여기고, 생활에 매우 검소하고 의복이 단정하며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당시 명사인 정수몽, 임소암, […]

조 성

(趙晟, 1492-1555)      조선조의 학자. 자는 佰陽, 호는 養心堂, 본관은 평양, 조수람의 아들이며 조광조․이연경의 문인이다. 1513년(중종 8)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병으로 30년을 요양으로 보냈다. 의약, 율려, 산수, 천문, 지리 등에 정통하여 의산율의 삼학교관을 지냈다. 부사과를 거쳐, 의영고령(義盈庫令)에 이르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글씨에도 능했다. 후학을 양성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했고, 특히 추천으로 조정의 律呂의 5음을 바로잡았다. 조성은 경기문화재자료 […]

조문형

(趙門衡, 1618-1699)      문신. 자는 敏甫, 호는 遁村, 본관은 평양, 용문 조 욱(趙昱)의 증손이다.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지평을 떠나 광주 둔촌에 있는 외조부 沈同知宅에서 성장하였다. 19세가 되자 학문에 뜻을 두고 집을 떠나 사천 金克亨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636년(인조 14) 겨울에 외숙이 있는 전북 고창군청 숙소에 갔다가 오랑캐가 서울을 범했다는 말을 듣고 둔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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