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서후리

서후리 추정 지석묘군

西厚里 推定 支石墓群 소재지 : 서종면 서후리 342답시  대 : 청동기시대종  류 : 고인돌   군도 1호선을 이용하여 수릉교에서 서후리 방면으로 진행하면 명달교가 나타난다.명달교를 건너 계속 진행하면 수릉2리 마을 회관이 확인된다.고인돌은 마을회관의 남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거리에 도로와 인접한 논 경작지 끝에 위치하고 있다.상석으로 추정되는 2매의 화강암이 서로 겹쳐져 있는데 경지정리시 옮겨진 것으로 판단된다.주변 경작지에서 […]

최익현

(崔益鉉, 1833-1906)    독립유공자. 조선말기 문신. 자는 贊謙, 호는 勉庵, 초명은 奇男, 관향은 경주이다. 1833년에 경기도 포천군 내북면 가체리에서 芝軒岱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4세에 부친을 따라 단양으로 가서 살았고 1843년 11세에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로 이사하여 21세까지 살았다. 여기서 면암은 노문리 벽계로 가서 화서 이항로 문하생으로 입문하고 스승 화서 댁에서 유숙하면서 수업하였다. 부친 岱는 이미 화서의 명성을 […]

신영건

(愼英健)      효자. 자는 子順, 본관은 居昌, 守身의 아들이다. 전설사별제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랐으나 광해군 때에 인목대비 폐모론에 관여했다고 김경징(1589~1637)이 모함하여 유배된 일이 있다.   그러나 경징의 부친 김류가 愼모를 허위로 죄에 얽어 넣은 사실이 폭로될 것이고, 무고한 관원을 유배시킨 조정에서 물의가 발생하면 도리어 자기에게 불리할 것을 예측하여, 김경징을 문초질책하고 속히 귀양을 석방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불과 […]

신경윤

(愼景尹, 1624~1704)      거창신씨 입향조. 문신. 자는 仲任, 호는 明谷, 본관은 거창, 전설사 별제 愼英振이다. 부인은 북한강 건너 남양주군 화도면 금남리 白月의 함평이씨 구원 이춘원(1571~1634)의 손녀요 판관 楚望의 딸이다. 楚望은 서종면 도장리 國老所의 함평이씨 입향조 李之星의 아버지 난계 楚奇와는 형제지간이다.   1624년(인조 2) 태어나서 1657년(효종 8)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60년(현종 1) 추천으로 고령현감을 지냈다. 1669년 후에 […]

신광흠

(愼光欽, 1768~1833)      효자. 자는 大顯, 본관은 거창, 愼麟瑞의 셋째 아들인데, 당숙인 國瑞에게 입양하였다. 엄한 가정에서 수업하다 장성하여서는 스승을 모시어 수학하여 널리 배우고 시오한 연구로 경사에 밝았다.   부모를 효도로써 섬기되 『小學』의 가르침대로, 그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하기에 힘쓰고 음식과 의복을 잘해드렸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렸다. 새벽이면 살펴서 방이 차아구면 불을 때서 따뜻하게 […]

신영상

(愼永祥, 1808~1890)      유학자. 자는 穉貞, 본관은 거창이다. 관직은 선공감역을 시작으로 하여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으로 수직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이르 렀다. 매사에 사리가 명확하고 힘이 장사이며, 빈백을 접함에 소홀히 함이 없었다.   특히 효성이 극진한 효자였다. 노모가 밤참을 매일 손수 지어 드리고, 방의 차고 더운 것을 살펴서 방바닥이 차면 새벽에 불을 때서 따뜻하게 해드리는 ‘冬溫而夏靖 […]

신무인

(愼無逸, 1676~1736)    문신. 자는 敬所, 호는 白淵, 본관은 거창, 소위장군 愼爾憲의 둘째 아들, 농암 김창협 문인이다. 1702년(숙종 28) 성균진사로 벼슬길에 올라 참봉, 봉사직장, 서흥현감, 곡산현령 병마도위로 재임 중 1721년(경종 1) 정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과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그 해 12월에 정묘사직이 위기에 처하여 사화가 태동하더니 신임사화가 일어났다. 정언으로 임무를 다하였으나 정세에 밀려 마침내 파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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