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마룡리

마룡리 느티나무

 □ 소  재 지 : 용문면 마룡1리 대 332-5번지 □ 지정사항 : 지정번호 경기-양평-28, 지정일 1982. 10. 15      6번 국도상의 용문교를 건너기전 마룡리 마내골과 용담마을의 경계지점인 용문천 지류상에 보호수 세 그루가 잘 어우러져 서 있다. 가운데 서 있는 나무가 가장 큰데 흉고둘레가 2.8m에 이르며 주된 줄기가 불균형적인 모습으로 주간의 높이 1m 부위에 직경 20cm의 […]

마룡리 고분

   용문면 마룡리 마천마을의 북서편 산지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용문산 남동주능선의 말단 정상부에서 남동방향으로 흘러내린 소능선의 중복이며 해발 145m 정도이다. 동편에는 용문천이, 서편에는 연수천이 대략 남북방향으로 흘러 남쪽에 북동-남서방향으로 흐르는 흑천에 합류되고 남편으로 탁 트여 있어 전망이 아주 좋다. 고분은 마을에서 고래장터라고 불린다. 정상부를 따라 고분의 위와 아래에는 봉토 직경이 7~8m 정도 되는 해평 윤씨의 […]

홍처대

(洪處大, 1609~1676)       조선조 문신. 자는 仲一, 호는 역헌(轢軒), 본관은 남양, 경기도 관찰사 洪命元의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9년(인조 17) 알성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정자가 되고, 1640년 봉상시 봉사직을 겸하였다. 이듬해 7월에 저작에 오르고, 9월에는 박사가 되었다.   1642년(인조 20) 12월에 예문관 검열, 1643년 정월에 대교로 승진되고, 이어 봉교 겸 설서가 되었다. 1644년 […]

마룡리 유물산포지

   이 유적은 용문면 마룡리에 위치하며 주민 윤민섭이 소장한 마제석촉을 토지박물관에 제공하면서 알려진 유적이다. 윤민섭에 의하면 토지박물관에 기중한 유물 외에도 수점의 마제석기를 더 채집하였지만 모두 망실되었다고 한다.   이 유적은 마룡리에서 용문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타나는 해발 100m 가량의 구릉부에 위치하였는데 이 구릉은 북쪽의 산록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나 최근의 도로개설로 인해 절단되어 독립구릉처럼 떨어져 있다. 구릉의 […]

조영호

(趙瑛鎬, 1889-1919)    항일독립운동자. 조영호는 양평 용문면 마룡리 출신이다. 직업은 농업을 전업으로 하면서 잡화상까지 겸하며 성실히 살아왔다. 그는 당시 30세의 나이로 1919년 3월 30일 김윤구 ․신순근과 함께 용문면 광탄리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기를 높이 들고 군중과 같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독립은 천운이니 사람의 힘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일본인은 물러가라”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3인이 잡혔다. 조영호는 징역 […]

윤택현

(尹澤顯, 1704~1779)      조선조 무신. 자는 仲猶, 본관은 해평, 판서 윤승길(尹承吉)의 6대손이다. 서사로 관직에 나아가 사정, 부장 등을 두루 역임하여 절충장군에 이르렀다. 효자로 증직 호조참판이다. 묘는 용문면 마룡리에 있다. (용문면)

윤면동

(尹冕東, 1728~1782)      조선조 문신. 자는 儀甫, 본관은 해평, 윤승길의 7대손이며 윤택현(尹澤縣)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로 출사하였다. 1760년(영조 36) 암행어사에 임명되고 1762년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을 역임하였다. 이때에 사도세자를 죽이는 사건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1764년 군수로 재직 중에 사소한 문제로 투옥되었다. 1776년 승정원 승지를 거쳐 양주목사에 임명되고 선파후나에 임명되었으나 파직을 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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