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인 물

최경상

(崔景祥, 1545-1628)    강릉최씨 입향조. 자는 孟說, 호는 鶴皐, 본관은 강릉, 경호거사판서 최세절의 손자요, 영월군수 최수증(崔壽增)의 첫째 아들이다. 1545년(인종 1) 태어나서 1628년(인조 6)에 별세하였다. 양주에서 살다가 서종면으로 갈마곡으로 이주하여 양평 입향조가 되었다. 1675년(현종 15)에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당시 성리학자 지퇴당 이정향(1549-1607)과 교유하였다. 아들이 基錫 ․ 基鐵 ․ 基鋈 ․ 基鐴 넷을 두었는데, 서종면에는 장자 기석의 […]

한상열

(韓相烈, 1876- ?)    한말의 의병, 한상열은 양평출신이다. 그는 1907년 8월부터 1909년까지 경기도 지평과 강원도 횡성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가 군대 강제해산에 따라 10월 31일 시위대 해산병 500여명과 지방 향병 500명의 이 연합의병부대가 여주에서 일본군과 접전하고자 도강을 시도하고 있었다.   당시 31일부터 한갑복․민긍호․한상열․이인영․여용서․심상회, 장모씨 등과 의병장이 거느리는 해산군 및 의병부대로 8,000여명의 연합의병부대가 횡성, 지평간, 毛古谷에 모여서 진지를 […]

최문활

(崔文活, 1600-1666)    문신. 자는 達源, 본관은 강릉, 증 이조참판 崔基鐴의 둘째 아들이다. 1630년(인조 8) 식년사에 병과로 급제하여, 울진 ․보령 ․ 함양 현령을 거쳐 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27) 정묘호란 때에 강화도에서 창의한 공로로 포상을 받고 제용직장에 임명하였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조정이 청나라와의 강화하는 것을 반대하여 척화상소를 올렸다. 묘는 양서면 양수리 용진에 있다.

한진교

(韓震敎, 1871- ?)    항일운동자. 韓殷敎라고도 하며, 서종면 정배리 167번지 출신이다. 그는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1920년도 해외동포들의 입단운동을 권장하고 국내 항일운동에 참여의식을 고취시켰다. 우국지사들과 합류하여 비밀문서를 발송하고 독립운동에 동참하며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는 임무를 맡았다.   한진교는 1919년 5월 비밁결사 대한독립군 환영단을 조직하기 위한 글을 배포하고 군자금을 지원 받는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조직을 이용하여 왜정에 대한 암살단 […]

최병배

(崔秉培, 1778-1856)    효자. 자는 汝根, 본관은 강릉, 효자 최광악(崔匡岳)의 아들로 지평면 송현리에서 태어났다. 8세에 86세의 모친이 와병 중에 위중한 상태였는데, 모친이 닭고기를 먹고싶다고 하자, 이 말을 듣고는 동지섣달 설한에도 밤중에 십리나 떨어진 원산리까지 가서 닭을 구하여 모친 소원을 풀어드렸다. 또 며칠 뒤에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기에 독바위에 얼음을 깨고 붕어 세 마리를 낚아서 모친에게 […]

한창호

(韓昌鎬, 1896- ?)      항일운동자. 갈산면(양평읍) 양근리 427의 출신이다. 그는 작업이 자전거 수리업이다. 한창호는 23세의 나이로 1919년 3월 23, 4일에 양평일원에 장날마다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한 시기에 합세하여 김경성, 서상석, 김석봉, 한봉철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지 시위운동을 주도하고, 군중들과 국난을 회복코자 독립만세 시위하다가 헌병대 분견소에 끌려갔다. 이로 인해 경성지방법원의 징역 10월에 처하여 옥고를 치렀다.

최상은

(崔相殷, 1644- ?)    강릉최씨 입향조. 자는 陽卿, 호는 東崖, 본관은 강릉, 崔繼孝의 아들이다. 본래는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이천리에 세거하였는데, 만년에 지평면 송현으로 이주하였다. 1672년(현종 13) 중사마시에 급제하고 1696년(숙종 22)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703년(숙종 29) 해남현감으로 재임 중에 별세하였다. 때는 동절기에 강릉 선산으로 장사지내고자 운구하는데 대관령에 대설이 내려 갈 수가 없었다. 양동에 거주하는 사종이 […]

조영호

(趙瑛鎬, 1889-1919)    항일독립운동자. 조영호는 양평 용문면 마룡리 출신이다. 직업은 농업을 전업으로 하면서 잡화상까지 겸하며 성실히 살아왔다. 그는 당시 30세의 나이로 1919년 3월 30일 김윤구 ․신순근과 함께 용문면 광탄리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기를 높이 들고 군중과 같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독립은 천운이니 사람의 힘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일본인은 물러가라”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3인이 잡혔다. 조영호는 징역 […]

다음 페이지 » « 앞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