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福鉉, 1906- ?) 독립유공자. 최복현은 용문면 출신이다. 일명 崔雄漢이라 한다. 지사는 1939년 서울 중앙고보학교 지리교사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 역사의 이순신 장군 전적이야기와 백두산 정계비등 내용을 강의하여 항일사상을 고취시켰다.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는 예언 사실과 1940년부터 재학생 5명이 최복현 교사를 중심으로 ‘5인독서회’를 조직을 하고 독립쟁취를 결의하고 한일유격정보와 임시정부 소식을 수습하면서 항일사상 고취시켰다. 이렇게 학생운동을 극비 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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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술후
(張述厚, 1847~1876) 유학자. 자는 程友, 아명은 通釋, 본관은 결성, 敬窩居士 張學洙의 첫째 아들이다. 화서 이항로의 문인으로 화서가 강학할 때에 참여하였다. 문필이 뛰어났다. 유묵이 강원대학교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묘소는 서종면 노문리 가마봉 아래 조부 장회진 묘하 남록에 있다. (서종면)
홍 신
(洪愼, 1489~1541) 문신. 자는 重叔, 본관은 남양, 안동부사 홍경창(洪慶昌)의 첫째 아들이다.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부윤을 역임하였다. 묘는 양평읍 공흥리에 있다. (양평읍)
최 섭
(崔涉, 1786-1847) 효자. 자는 汝楫, 호는 忍黙?, 본관은 경주, 입향조 최유강의 후손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1863년(철종 14)에 나라에서 효자로 정려하였다.
장자호
(張自好, 1583~1600) 문신. 자는 守謙, 본관은 안동, 한성부우윤 장세철(張世哲)의 첫째 아들이다. 1583년(계미, 선조 16) 5월 양평에서 태어나서 1612년(광해 4) 생원시에 합격하고 다음 해에 증광시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 춘추관 기사관을 역임하였다. 1616년(광해 8) 홍문관 부수찬, 1617년 통훈대부 사헌부가찰, 1620년 통정대부 예조참의·공조참의, 1621년(광해 13) 승정원 동부승지, 1626년(인조 4)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 1636년(인조 14) 병조참지, 부경부사, 영흥도호부사를 지냈다. […]
홍남표
(洪南杓, 1888~1950) 사회주의 운동가. 본관은 남양인데 1888년 양평읍(갈산면) 신애리 빈농에서 태어나 중앙학교(중앙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였다. 1910년 8월 국권피탈에 반대한 시위로 체포되었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10월 만주지역의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다가 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일제의 무자비한 학살인 일명 간도참변을 피해 베이징[北京]으로 피신하였다. 1920년 6월 국내로 잠입하던중 丹東縣에서 검거되었으며, 출감 후 1924년 홍명희·홍증식·구연흠·박일병 […]
최영석
(崔榮錫, 1850-1915) 효자. 자는 稚九, 호는 東袖, 본관은 경주, 벼슬이 통정대부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중추부사를 지냈다. 친상을 당하여 시묘하며 눈물이 마르지 아니하니, 향리에서 효행에 놀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효행이 지극하여 정려하였다.
장회진 부인 벽진이씨
(碧珍李氏) 효절부. 본관은 벽진, 화서 이항로의 장녀로 서종면 벽계 출신이다. 결성인 張集星의 다들이요 화서문인인 동우 張會鎭에게 출가하였다. 이씨는 숙원의 덕과 정정의 행실이 있는데다가 밖으로 부친의 엄한 교훈과 안으로는 모부인 고령박씨의 바른 교화가 있었다. 太任 太姒를 사모하고 틈틈이 女四書를 읽어서 부덕이 지극히 갖추어졌다. 부모를 섬김에 곁을 떠나지 않고 시중들고 음식 장만하는 일을 오직 부모가 원하는 […]
홍득기
(洪得箕, 1635~1673) 조선의 문신. 자는 子範, 호는 月湖, 시호는 孝簡, 본관은 남양이다. 우의정 홍중보(洪重普)의 아들로 숙안공주와 결혼 후, 익평부위로서 도위겸도총관이 되었고, 효종이 즉위하자 익평위에 진봉, 1660년(현종 1)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인품이 겸손하고 소탈하여 주위사람과 백성들의 숭앙을 받았다. 묘소는 용문면 화전리 부친 이천(重간) 묘하에 있고, 비문은 박세당이 지었다. (용문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