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패망할 것이라는 예언 사실과 1940년부터 재학생 5명이 최복현 교사를 중심으로 ‘5인독서회’를 조직을 하고 독립쟁취를 결의하고 한일유격정보와 임시정부 소식을 수습하면서 항일사상 고취시켰다. 이렇게 학생운동을 극비 진행 중 1941년 8월 22일 5인 독서회 조직이 발각되어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다음 동대문에서 구속되었다가 함경도로 이송되고 1942년 9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죄로 징역 1년(미결 20일 통산)형을 받고 복역 중 1943년 1월 5일 출옥하였다.
지사는 1943년 1월부터 광복할 때까지 만주에서 한인노무자에게 민족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는 교사는 교육자가 역사의 사실을 날조하여 학생을 선동했다고 날뛰던 일경들에게 백두산정계비의 내력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내 역사 강의를 듣고 학생들이 항일사상을 가지게 되었다며 그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니 저 학생들은 석방해 주기 바란다”고 말하였다. 여기에 관련된 학생들은 약 1맥일만에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되고 최복현 교사는 3년형을 치르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에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복현
(崔福鉉, 1906- ?)
독립유공자. 최복현은 용문면 출신이다. 일명 崔雄漢이라 한다. 지사는 1939년 서울 중앙고보학교 지리교사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 역사의 이순신 장군 전적이야기와 백두산 정계비등 내용을 강의하여 항일사상을 고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