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호

(張自好, 1583~1600)
 
    문신. 자는 守謙, 본관은 안동, 한성부우윤 장세철(張世哲)의 첫째 아들이다. 1583년(계미, 선조 16) 5월 양평에서 태어나서 1612년(광해 4) 생원시에 합격하고 다음 해에 증광시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 춘추관 기사관을 역임하였다. 1616년(광해 8) 홍문관 부수찬, 1617년 통훈대부 사헌부가찰, 1620년 통정대부 예조참의·공조참의, 1621년(광해 13) 승정원 동부승지, 1626년(인조 4)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 1636년(인조 14) 병조참지, 부경부사, 영흥도호부사를 지냈다. 1640년 고원군수, 1641년(인조 19) 홍주목사·기주목사, 1646년(인조 24) 3월 12일에 충주목사로 나아갔다. 그 해에 장자호는 환갑을 맞이하였다. 환갑 해를 만나 8월에 동갑계 「癸未生修契」를 만들어 친구들 간에 친목과 우의를 다졌다. 이계첩은 1646년 8월 계원인 韓元之가 기록하였는데, 명단에는 31명의 성명·자·생일·관직·본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契帖은 총 11페이지로 「癸未生修契序, 契員, 契憲十章」 세 부분으로 편철되어 있다. 여기에 명단을 수록하는 것은 혹 계원 후손이 360년 전 조상의 교우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계첩은 장자호의 후손 張祐相氏가 소장하고 있다. 장자호의 묘는 양평읍 덕평리에 있다. (양평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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