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처대

(洪處大, 1609~1676)
 
    조선조 문신. 자는 仲一, 호는 역헌(轢軒), 본관은 남양, 경기도 관찰사 洪命元의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9년(인조 17) 알성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정자가 되고, 1640년 봉상시 봉사직을 겸하였다. 이듬해 7월에 저작에 오르고, 9월에는 박사가 되었다.
   1642년(인조 20) 12월에 예문관 검열, 1643년 정월에 대교로 승진되고, 이어 봉교 겸 설서가 되었다. 1644년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병조좌랑으로 전직했다. 암행어사로 호남지방의 여론을 들어 청렴도를 물었다. 1645년 경기도 도사, 1646년에 예조좌랑에서 금산현감으로 나갔다. 1649년(인조 27) 정언 겸 지제교, 홍문관 부수찬, 부교리, 교리에 올랐다.
   1651년(효종 2) 병조정랑, 1652년 사간원 헌납, 이후 시강원 사서, 한학교사, 이조좌랑 · 정랑, 1653년 수찬, 1654년(효종 5) 의정부검상, 보덕, 군자감 정 집의, 사복시정, 대사성, 승정원 동부승지에 올랐다. 1658년(효종 9)에 좌부승지, 이듬해에 안변부사, 호조참의에 올랐다.
   1662년(현종 3) 동지부사, 형조참의, 좌승지, 1664년 10월 황해도 관찰사, 1666년(현종 7) 전주부윤, 경주부윤, 1671년 평안도 관찰사, 1672년 사은사부사, 1673년 2월에 도승지, 한성부윤, 1674년(현종 15) 호조참판, 병조참판 겸 실록청 당상을 역임하였다. 1676년(숙종 2) 동지의금부사에 임명되었고 지중추부사로 영남무과전시 시관으로 발령되어 임지로 가던 도중 군위에서 68세로 타계하였다. 묘는 용문면 마룡리에 있다. (용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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