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상

(愼永祥, 1808~1890)
 
   유학자. 자는 穉貞, 본관은 거창이다. 관직은 선공감역을 시작으로 하여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으로 수직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이르 렀다. 매사에 사리가 명확하고 힘이 장사이며, 빈백을 접함에 소홀히 함이 없었다.
   특히 효성이 극진한 효자였다. 노모가 밤참을 매일 손수 지어 드리고, 방의 차고 더운 것을 살펴서 방바닥이 차면 새벽에 불을 때서 따뜻하게 해드리는 ‘冬溫而夏靖 昏定而辰省’을 하루도 결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부모 봉양하는 일을 하녀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하여 세상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는 마을 사람 중 빈곤하여 조석을 채우지 못할 때에는 식량을 나누어주어서 구제하곤 하였다. 세도가의 추대를 거절하였으나 벽계화서 이항로에 종유하면서 의리를 추구하며 살았다. 지헌 최대가 아들 익현과 함께 서후리에 살았는데 막연한 사이였는데, 면암고 신씨와는 사돈지간이 되었다. 묘는 서종면 서후리에 있다. (서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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