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선생 생가터

夢陽 呂運亨先生 生家址
소재지 : 양서면 신원리
시   대 : 현대
종   류 : 건물지
 
   신원역에서 묘곡마을로 약 15분 정도 가다보면 오른편에 야트막한 야산 하나가 나오는데 이곳이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곳이다.
   생가 앞에는 최근에 세운 「몽양여운형선생생가지비문」이 세워져 있다.
   현재 생가터는 평탄한 대지로 남아있으며 숲으로 우거져 있다.
   夢陽 여운형(1886~1947)은 독립운동가, 정치가였다.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1911년 평양신학교를 중퇴하고 1914년 중국 金陵大學을 졸업하였다.
   1919년 임시정부의 외무차장이 되어, 張德洙 등과 일본에 가서 朝野를 상대로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1921년 고려공산당에 가입,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遠東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하였다.
   1929년 동남아시아 각지를 순회하면서 미국과 영국의 식민정책을 비판하다가 일본 경찰에 인도되어 3년간 복역하였으며, 1944년 조선 건국동맹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46년에는 사회노동당, 1947년에는 근로인민당을 조직하고, 당수로서 온건좌파 세력을 규합하여 좌우합작운동과 미소공동위원회의 추진 등 정치활동을 하다가 암살당하였다.
   2005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통령 장이 수여되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당초 북한산에 안장되었던 여운형선생의 묘소는 현재 수유리 묘소로 이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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