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광현

(呂光鉉, 1885~1962)
 
   독립유공자. 자는 周顯, 본관은 함양, 여규덕(呂圭德)의 둘째 아들이다. 여광현은 양서면 신원리 496의 출신이다. 당시 34세의 나이로 1919년 3월 31일 강상면과 4월 3일 고읍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가 광무황제의 승하를 당하여 망국의 통한을 가누지 못하고 있던 중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최대현 · 이보원 · 신우균 등과 뜻을 모으고 거사할 날짜를 3월 31일로 정하여 선서와 태극기를 비밀리에 인쇄, 제작하는 한편 동지들을 포섭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31일 오후 11시에 지사는 강상면 사무소 앞에서 군중 300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뒤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4월 3일에도 고읍면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는데 이때에는 고읍면이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의 강상면, 강하면, 양서면 등지에서 합류하여 시위 군중의 규모가 4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은 고읍면 만세시위에 이어서 양근읍으로 항거하였으나 일경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해산하고 말았다. 이때 윤기영은 만세현장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지사는 1919년 10울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笞刑 90대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도 대통령표창을 追敍했다. (양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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