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탄리 유물산포지1


   이 유적은 용문면 광탄리 문화마을 뒤편 능선부에 형성된 유물산포지로 현재는 문화마을과 배후의 전원주택지 그리고 도로개설 등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마을에 접한 극히 작은 능선부에만 남아 있게 되었다. 토지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과정에서 발견되어 학계에 알려졌으며 조사 당시 이미 도로공사가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긴급한 시굴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유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편과 더불어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마제석부 ․ 무문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유적의 남쪽으로는 흑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데 이 흑천변에는 곡류부의 안쪽으로 강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야트막한 구릉성산지로 이어지다가 점차 해발고도가 높아지면서 험준한 산세가 이어진다. 이러한 지형조건은 배산임수라고 하는 전형적인 주거입지라 할 수 있는데 신석기시대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양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강변의 충적지에 위치한 경우가 더 많은 데 비해 조금 다른 양상의 입지라 할 수 있다.
 
   이 유적에서 채집된 유물은 3점의 빗살무늬토기편으로 1점은 초생달 모양의 조문이 압인시문된 것이고, 다른 2점은 어골문 계열의 문양이 시문된 것이다. 이 토기편들은 한강변의 충적지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비교할 때 시기적으로 늦은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 유족들이 강변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입지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강변 충적토에 위치한 유적들의 시기가 대부분 신석기시대 중기 이전으로 편년되고 있는 데 비해 광탄리 유적과 같은 이보다 늦은 단계의 유적들은 조금 지대가 높은 구릉지로 이동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유적으로 광탄리 유적 외에도 용인 상갈리 유적 등이 있다.
   여하간 신석기시대 유적의 입지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 많은 자료의 축적을 통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겠으나 신석기시대에 뒤이은 청동기시대의 일반적인 주거가 능선부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대변화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추정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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