兪致善 墓 소재지 : 서종면 정배리 산44-3임시 대 : 조선시대종 류 : 조선민묘 유치선 묘는 정배1리 노인회관의 뒷산 해발 192m 지점에 위치한다.원형의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고, 1단의 계체석 아래의 좌우에 망주석이 세워져 있다.묘의 우측에는 墓碣이 위치하며 大韓光武 2년(1898)에 세운 것이다.유치선은(1812~1872)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杞溪. 자는 子慶. 시호는 孝簡이다.순조31년(1831) 司馬試에 급제하여 […]
카테고리: 서종면
이덕수 묘
李德壽 墓 소재지 : 서종면 수입리 산9-1임시 대 : 조선종 류 : 조선민묘 이덕수 묘는 이행건 묘에서 우측으로 뻗어내린 능선상에 조성되어 있다.이행건 묘에서 남서쪽으로 약 5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貞夫人 海州崔氏 晉州姜氏와의 합장묘이다.묘의 좌측에는 1992년에 건립한 묘비가 있다.비좌와 비신, 옥개석을 갖춘 형태이며 전면에 ‘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弘文館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世子左賓客 全義李公德壽之墓 甲坐三位合□ 配 贈 貞夫人 海州崔氏부右 後配 封 貞夫人 晉州姜氏부左’라고 […]
장회진 묘
張會鎭 墓 소재지 : 서종면 노문리 40-1임시 대 : 조선종 류 : 조선민묘 화서 이항로 생가 건너편 동편마을의 우측으로 난 소로를 따라 가다보면 도로 좌측에 최근에 건립한 신도비와 효자비가 확인된다.이 신도비의 서쪽으로 작은 등산로가 있는데, 장회진 묘는 이 등산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500m 정도 올라가면 ‘常村李貞淑女史華甲詩碑’가 있다. 여기서 다시 200m 정도 올라가면 묘가 […]
문호리 적석총
문호리 강변에 위치하며 1972년 팔당댐 수몰지구 발굴시 조사되었다. 조사 당시 상당히 많은 양의 돌들이 이동 ․ 교란되어 있어 원래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으나 그래도 평면형태가 방형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1999년 양평군 일대를 지표조사할 때 문호리에서 만난 주민에 의하면 발굴된 적석총의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고 하나 불확실하다. 한 변의 길이가 11cm에 달하는 방형 적석총이다. […]
수릉리 지석묘
이 유적은 토지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서후리에서 발원하여 양평군의 서부 산록지대를 곡류하여 문호리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문호천변에 있다. 지석묘가 위치한 문호천변의 충적지는 지금 논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변은 줄줄이 이어진 산록으로 막혀 있는 상태이다. 이 지석묘의 재질은 화강편마암인데 규모는 장축 280cm, 단축 246cm, 높이 96cm이고 평면형태는 타원형에 가깝다. 장축방향은 N-42°-W로 하천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현재 상태로는 […]
노문리 유적
蘆門里 遺蹟 소재지 : 서종면 수입리 산18-1번지시대 : 고려-조선종류 : 분묘군 유적은 352번 도로에서 수입교를 건너 86번 도로로 들어서서 프리스틴밸리 G.C 가는길로 진입하면 도로의 좌우측에 입지한다.유적의 지형은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긴 능선부와 사면으로 해발고도는 150~160m 내외이다.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발굴조사에서는 토광묘 10기, 석곽묘 2기, 수혈유구 2기, 주거지 3기 등 고려전기와 조선전기에 걸친 유구들이 […]
허 직
(許稷, 1592~1644) 조선 문신. 자는 春容, 호는 白石, 본관은 양천, 효자 허 회(許淮)의 첫째 아들이다. 1613년(광해 5)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6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였다. 통정대부 행 파주목사, 참의를 역임했다. 묘는 서종면 수입리 꽃대울(花時谷) 창해 묘하에 있다. (서종면)
허 회
(許淮, 1573~1617) 조선조 효자. 자는 巨源, 호는 漁隱, 본관은 양천, 현감 許鑏의 셋째 아들이다. 광해군 때에 경기도 광주에서 서종면 수입리 바치울로 이주하여 살면서 부모에 효행이 지극하였다. 정배리 고령인 朴盡性의 딸과 결혼하여 稷 檍 橚 椈 格 檡 6형제를 두었다. 부모에 효도가 지극하여 나라에서 집의를 수여했다. 묘소는 서종면 바치울에 있고, 묘표는 청음 김상헌이지었다. (서종면)
허직 부인 한산이씨
(1589~1636) 열녀 한산이씨는 이조판서 李塏(1417~1456)의 손녀요 李慶源의 딸로 효자 허 회의 아들 통정대부 행 파주목사 허 직(1592~1644)의 아내이다. 이씨는 소학 논어 맹자를 배워 능통했으며 평소에 의젓하게 열장부의 풍도가 있었다. 병자호란 때 남편 허 직이 관리로 남한산성에 들어가자 부인이 혼자 자녀를 데리고 楮子島에서 산협으로 피난하던 중 검단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에 청군을 만나자 몸에 지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