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은위 정재화 묘


□ 소  재 지 : 청운면 비룡리 산53
□ 시      대 : 조선시대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15호
 
   청운면소재지에서 6번 도로를 따라 홍천 방면으로 약 23km 가면 비룡교가 나온다. 이 비룡교를 지나 남쪽으로 난 마을도로를 따라 400m쯤 들어가면 도청마을에 이른다. 정재화의 묘는 이 마을의 북쪽에 접한 야산의 남쪽 구릉지에 있다.
   흥은위(興恩慰) 정재화(鄭在和, 1754~1790)는 영조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 莊祖)의 부마로서,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6대손이다. 1766년(영조 42) 정조와 동복 남매간인 청선군주(淸璿郡主)와 혼인하여 흥은부위(興恩副尉)의 작위를 얻었다. 용모가 준수하고 처신이 신중하여 매부되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36세를 일기로 1790년(정조 14)에 세상을 떠났다. 공주의 아버지인 장헌세자가 비운에 죽었으므로 군주(郡主)라 부르다가 1897년(광무 1)에 두 사람의 작위가 흥은위(興恩尉)와 공주로 추봉되었다. 정재화는 청선공주와 1남 2녀를 두었으나 사별하고, 밀양 박씨와 재혼하였으며 슬하에 1남을 얻었다.
   정재화의 묘 좌 ․ 우에는 높이 1m 내외의 토장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석열에 의해 2단으로 구분되어 상석, 향로석, 장명등, 그리고 좌우에는 문인석, 석수, 망주석 등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또 현재 상석이 있는 열의 좌우에 1변 62cm, 높이 190cm의 방형대석이 9.6m의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으나 그 용도는 알 수 없다. 묘 주위는 석축에 기와를 얹은 곡장이 들러졌었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없어지고 후면에 다듬은 장대석을 3단 높이로 쌓은 석축렬이 남아있다. 묘역에는 본래 재실 등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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