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인 물

최춘삼

(崔春三, 1901-0928)    독립군. 최춘삼은 양평출신으로 3.1운동 당시에 독립군으로 만주와 러시아 땅에서 항일투쟁을 하였다. 최춘삼은 만주 중동전선에서 이종순․이우정 등과 신민부 정치부위원으로 활약하였다.

정창손

(鄭昌孫, 1402-1487)    조선초기의 문신. 자는 孝仲, 호는 동산, 시호는 忠貞, 본관은 동래, 중추원사 鄭欽之의 아들이다. 1423년(세종 5) 사마사를 거쳐 1426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고 집현전의 저작랑과 교리를 역임하면서 『통감훈의』의 편찬에 참여하였다.1443년 집현전 응교가 되어 최만리 등과 한글 창제에 반대하다가 파직, 투옥되기도 하였고 세종의 불경사업에 반대하여 좌천되기도 하였다. 1447년(세종 29) 문과중시에 등재한 후 1449년 집현전 부제학으로 춘추관편수관 […]

조인환

(曺仁煥)    독립유공자. 본관은 창녕인데, 양평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가나 후손은 찾지 못하였다. 1907년 충청에서 농민을 규합하여 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경기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8월 경기 양평군 양평읍의 군청 ․세무서 ․우편물취급소 등 관청을 습격, 파괴하고 출동한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 뒤 허위의 13도 연합의병의 서울 진공작전이 실패한 […]

한덕이

(韓悳履, 1871-1939)    독립유공자. 한덕이는 옥천면 옥천리 806의 출신이다. 기독교 장로로서 1920년대 조선독립운동 활동을 하면서 대한독립단에 참여하고 신유균의 권고를 받고 1920년 5월 경기도 독립지단장으로 양동면 쌍학리, 광주군 남종면 등 서당교사를 역임하면서 양평군내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대한독립단 명의로 군자금 모금책으로 활동하였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보내온 격문을 인쇄, 배포하였으며 군수를 비롯한 친일분자들에게 사형집행선고문을 우송하는 한편 군내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

조형생

(趙亨生, 1564- ?)    무신. 자는 達可, 호는 遯谷, 조 욱(趙昱)의 손자다. 1602년(선조 35) 사마시에 합격하고 선비들의 천거로 사재감 주부에 제수되고 1624년 이괄난 때에 공조좌랑으로 어가를 호위하였다. 1654년(효종 5) 예산현감으로 있다가 3년만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의리를 중하게 여기고, 생활에 매우 검소하고 의복이 단정하며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당시 명사인 정수몽, 임소암, […]

최경상

(崔景祥, 1545-1628)    강릉최씨 입향조. 자는 孟說, 호는 鶴皐, 본관은 강릉, 경호거사판서 최세절의 손자요, 영월군수 최수증(崔壽增)의 첫째 아들이다. 1545년(인종 1) 태어나서 1628년(인조 6)에 별세하였다. 양주에서 살다가 서종면으로 갈마곡으로 이주하여 양평 입향조가 되었다. 1675년(현종 15)에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당시 성리학자 지퇴당 이정향(1549-1607)과 교유하였다. 아들이 基錫 ․ 基鐵 ․ 基鋈 ․ 基鐴 넷을 두었는데, 서종면에는 장자 기석의 […]

한상열

(韓相烈, 1876- ?)    한말의 의병, 한상열은 양평출신이다. 그는 1907년 8월부터 1909년까지 경기도 지평과 강원도 횡성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가 군대 강제해산에 따라 10월 31일 시위대 해산병 500여명과 지방 향병 500명의 이 연합의병부대가 여주에서 일본군과 접전하고자 도강을 시도하고 있었다.   당시 31일부터 한갑복․민긍호․한상열․이인영․여용서․심상회, 장모씨 등과 의병장이 거느리는 해산군 및 의병부대로 8,000여명의 연합의병부대가 횡성, 지평간, 毛古谷에 모여서 진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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