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인 물

한창호

(韓昌鎬, 1896- ?)      항일운동자. 갈산면(양평읍) 양근리 427의 출신이다. 그는 작업이 자전거 수리업이다. 한창호는 23세의 나이로 1919년 3월 23, 4일에 양평일원에 장날마다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한 시기에 합세하여 김경성, 서상석, 김석봉, 한봉철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지 시위운동을 주도하고, 군중들과 국난을 회복코자 독립만세 시위하다가 헌병대 분견소에 끌려갔다. 이로 인해 경성지방법원의 징역 10월에 처하여 옥고를 치렀다.

최상은

(崔相殷, 1644- ?)    강릉최씨 입향조. 자는 陽卿, 호는 東崖, 본관은 강릉, 崔繼孝의 아들이다. 본래는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이천리에 세거하였는데, 만년에 지평면 송현으로 이주하였다. 1672년(현종 13) 중사마시에 급제하고 1696년(숙종 22)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703년(숙종 29) 해남현감으로 재임 중에 별세하였다. 때는 동절기에 강릉 선산으로 장사지내고자 운구하는데 대관령에 대설이 내려 갈 수가 없었다. 양동에 거주하는 사종이 […]

조영호

(趙瑛鎬, 1889-1919)    항일독립운동자. 조영호는 양평 용문면 마룡리 출신이다. 직업은 농업을 전업으로 하면서 잡화상까지 겸하며 성실히 살아왔다. 그는 당시 30세의 나이로 1919년 3월 30일 김윤구 ․신순근과 함께 용문면 광탄리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기를 높이 들고 군중과 같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독립은 천운이니 사람의 힘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일본인은 물러가라”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3인이 잡혔다. 조영호는 징역 […]

함 규

(咸規)    양근함씨의 중시조. 시호는 襄厚, 본관은 양근, 신라 景文王(?-875)때에 출생하였다. 용문산에 성지를 구축하고 살았던 咸赫의 19대 후예가 된다. 함규는 용문산 함왕성지에 살면서 항양의 호족으로 자임하며 영도하에 있는 백성을 어질게 다스려 후삼국이 난립하여 혼란할 때에 그의 영도에 잘 따랐다.   함규는 군사를 일으켜 고려 왕건태조(877-943)를 도와 고려개국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으로 은청광록대부․광평시랑 평장사 태위 반열에 올랐다. 옥천면을 […]

최세절

(崔世節, 1479-1535)    조선조 문신. 자는 介之, 호는 梅窓 또는 鏡湖居士로 본관은 강릉이요, 병조참판 崔應賢의 첫째아들이다. 1498년(연산 4)에 사마양시에 급제하고 1504년(연산 10)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그 후 무과에 급제하고 호당에도 뽑혔으며 이조참의 및 예조참의와 관서 ․ 호남 ․ 영남 ․ 관동의 4도 감사를 역임하였다.   대사헌과 형조․호조․병조․공조 4조의 참판과 오위도총부 부총관, 순변도절제사, 한성부 우윤을 지내고, 1533년(중종 28) […]

조 욱

(趙昱, 1498-1557)    유학자. 자는 景陽, 호는 龍門 ․ 眞齊, 시호는 文康, 본관은 평양, 판관 趙守의 아들이다. 1516년(중종 11)에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조광조, 김식을 사사하면서 학문연마에 힘썼다. 기묘사화 때 두 스승이 연루되었으나 연소하다고 하여 화를 면하였다.   그 뒤에 형인 趙晟과 식녕지역에 집을 짓고 학문을 강론하며 지냈는데, 세인들은 그들을 정호, 정이 형제에 비겨 […]

함 순

(咸淳)    문신. 자는 子眞, 호는 市隱, 시호는 文翼, 본관은 양근, 함유일(咸有一)의 아들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문장과 절개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임춘․오세재․이인로․조통․황보항․이담지 등과 망년우를 맺었는데, 세상에서는 이들을 죽림칠현이라고 한다. 양양현감을 지냈다.

최수증

(崔壽嶒, 1501-1552)    문신. 본관은 강릉, 境湖居士 崔世節의 첫째 아들이다. 1534년(중종 29) 중사마시에 합격하여 영월군수를 역임하고 사후에 좌통례 통훈대부가 추증되었다. 묘는 서종면 문호리 갈마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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