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奉喆, 1897- ?) 독립유공자. 갈산면(양평읍) 양근리 154번지 출신이다. 농업에 종사하다 22세 나이로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3월 23-24일 양평일대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여 한창호, 김경성, 서상석, 김석봉과 함께 조선독립시위운동을 활약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마침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의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또한 독립군과 만주, 노령지역에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한때는 ‘고려송산청년회’등에 가입하고 독립군으로 활동해온 바 있다. 그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가명으로 사용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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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유일
(咸有一, 1106-1185) 고려 문신. 자 亨天, 시호는 良敬, 본관은 양근, 함 규(咸規)의 5대손 德候의 아들이다. 재상 이준양에게 의탁해 있던 중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 때 이부기관이 되어 이준양을 도와 대궐을 지켰고, 1135년 묘청의 난 때 하급관리로 공을 세워 서경유수록사가 되었다. 추밀원사 왕충의 천거로 선군기사로서 내시에 들어가 군대의 주사를 맡았다. 교로도감이 되어, 무당을 교외로 추방하고 […]
허 균
(許日勻 , 1563~?) 양천허씨 입향조. 자는 士輝, 본관은 양천, 許鑑의 첫째 아들이다. 서종면 오리개(문호 3리) 사는 연일정씨 현감 정석희가 장인이다. 병자호란 때 균은 호란을 피하여 처가댁 근처인 서종면 문호리로 이주하여 서종면 양천허씨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란(1636~1637)은 균이 73세였으므로 균의 졸년을 알 수 없어서 이 주연유에 대하여 정확한지는 의문점이 있다. 묘소는 서종면 도장1리 산22번지에 […]
홍 률
(洪瑮) 남양홍씨 입향조. 자는 汝粹, 본관은 남양, 익원군 洪慶霖의 현손이다. 선조 때에 진사에 합격하였는데, 양동면 계정리로 낙향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양동면)
최대현
(崔大鉉, 1852-1931) 독립유공자. 최대현은 양평출신이다. 일명 崔大奎라고도 한다. 한말에는 의병장으로 경기도 일원에서 활약하였으며, 3.1운동 때는 양평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왜적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같은 해 8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자주적 외교권을 강탈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
최유강
(催有江, 1375- ?) 경주최씨 입향조. 호는 杜老, 본관은 경주이다. 고려조 을묘년에 사마사에 합격하고 음보로 익솔을 지낸 후 갑자년에 천문과에 급제하였다. 비서정자, 중서사인, 문하시랑 지제에 이르고 봉익대부 전법판서에 올랐다. 태조가 누차 예를 갖추어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고 여주 대송면 계림동에 복거하여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다 하세하였다. 지평면 수곡리 수곡서원에 제향하고 있다.
최익현
(崔益鉉, 1833-1906) 독립유공자. 조선말기 문신. 자는 贊謙, 호는 勉庵, 초명은 奇男, 관향은 경주이다. 1833년에 경기도 포천군 내북면 가체리에서 芝軒岱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4세에 부친을 따라 단양으로 가서 살았고 1843년 11세에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로 이사하여 21세까지 살았다. 여기서 면암은 노문리 벽계로 가서 화서 이항로 문하생으로 입문하고 스승 화서 댁에서 유숙하면서 수업하였다. 부친 岱는 이미 화서의 명성을 […]
홍효손
(洪孝孫,) 문신. 본관은 남양, 홍 건(洪建)의 첫째 아들이다. 벼슬이 가선대부 숙천부사이다. 증직 분충찬모정사공신 한성판윤 翼平君이다. 묘는 양평읍 공흥리에 있다. (양평읍)
조언수
(趙彦秀, 1497-1574) 문관. 자는 伯高, 호는 信善堂, 시로는 貞簡, 본관은 양주, 대제학 趙末生의 5대 종손이며 돈영 趙邦佐의 아들이다. 1497년(연산군 3) 출생하여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이 되고, 1539년 사서를 거쳐 1545년(인종 1) 사인이 되고, 그 해 명종이 즉위한 뒤 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이듬해 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고, 동부승지가 되었다. 1548년 대사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