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현

(崔大鉉, 1852-1931)
   독립유공자. 최대현은 양평출신이다. 일명 崔大奎라고도 한다. 한말에는 의병장으로 경기도 일원에서 활약하였으며, 3.1운동 때는 양평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왜적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같은 해 8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자주적 외교권을 강탈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바로 군대해산을 강행하여 우리민족 우리주권을 무력화시겼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여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속속 봉기하여 일본군과 친일주구들을 처단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최대현은 대한재국 시기 오위장 출신으로 1907년 군대해산 후 의병을 일으켜 부하 700여명을 이끌고 경기도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1919년 3월 31일 양평군 강하면 사무소 앞에서 68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면민 300여명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다음날 4월 1일 양서면 도곡리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 부근에서 집합한 2천여 명과 함께 다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절규하였다.
   이후 시위군중을 인솔하고 고읍면 용암리 언덕까지 행진하고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11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및 벌금 20원을 받고 이에 불복 공고하여 11월 17일 경성복지법원에서 징역 6월 및 벌금 20원으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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