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수입리

이덕수 묘

李德壽 墓 소재지 : 서종면 수입리 산9-1임시   대 : 조선종   류 : 조선민묘   이덕수 묘는 이행건 묘에서 우측으로 뻗어내린 능선상에 조성되어 있다.이행건 묘에서 남서쪽으로 약 5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貞夫人 海州崔氏 晉州姜氏와의 합장묘이다.묘의 좌측에는 1992년에 건립한 묘비가 있다.비좌와 비신, 옥개석을 갖춘 형태이며 전면에 ‘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弘文館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世子左賓客 全義李公德壽之墓 甲坐三位合□ 配 贈 貞夫人 海州崔氏부右 後配 封 貞夫人 晉州姜氏부左’라고 […]

허 회

(許淮, 1573~1617)      조선조 효자. 자는 巨源, 호는 漁隱, 본관은 양천, 현감 許鑏의 셋째 아들이다. 광해군 때에 경기도 광주에서 서종면 수입리 바치울로 이주하여 살면서 부모에 효행이 지극하였다. 정배리 고령인 朴盡性의 딸과 결혼하여 稷 檍 橚 椈 格 檡 6형제를 두었다. 부모에 효도가 지극하여 나라에서 집의를 수여했다. 묘소는 서종면 바치울에 있고, 묘표는 청음 김상헌이지었다. (서종면)

허직 부인 한산이씨

(1589~1636)      열녀 한산이씨는 이조판서 李塏(1417~1456)의 손녀요 李慶源의 딸로 효자 허 회의 아들 통정대부 행 파주목사 허 직(1592~1644)의 아내이다. 이씨는 소학 논어 맹자를 배워 능통했으며 평소에 의젓하게 열장부의 풍도가 있었다. 병자호란 때 남편 허 직이 관리로 남한산성에 들어가자 부인이 혼자 자녀를 데리고 楮子島에서 산협으로 피난하던 중 검단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에 청군을 만나자 몸에 지니고 […]

노문리 유적

蘆門里 遺蹟 소재지 : 서종면 수입리 산18-1번지시대 : 고려-조선종류 : 분묘군   유적은 352번 도로에서 수입교를 건너 86번 도로로 들어서서 프리스틴밸리 G.C 가는길로 진입하면 도로의 좌우측에 입지한다.유적의 지형은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긴 능선부와 사면으로 해발고도는 150~160m 내외이다.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발굴조사에서는 토광묘 10기, 석곽묘 2기, 수혈유구 2기, 주거지 3기 등 고려전기와 조선전기에 걸친 유구들이 […]

허 직

(許稷, 1592~1644)      조선 문신. 자는 春容, 호는 白石, 본관은 양천, 효자 허 회(許淮)의 첫째 아들이다. 1613년(광해 5)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6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였다. 통정대부 행 파주목사, 참의를 역임했다. 묘는 서종면 수입리 꽃대울(花時谷) 창해 묘하에 있다. (서종면)

허 격

(許格, 1595-1690)    조선조 학자. 자는 春長, 호는 滄海, 鵝湖, 崇禎處士, 본관은 양천, 좌찬성 許硡의 5대손, 효자 허 회(許淮)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안눌(1571-1637)의 문인이다. 문장과 기절로 이름나 있고 서종면 수입리 바치울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627년(이조 5)에 조정이 청나라와 화친한 것에 대하여 비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산천을 방랑하다가 덕수이씨 문정공 이식(1584-1647)의 권유로 과거에 나갔었으나 법식이 맞지 않아 빠졌다.   1636년(인조 […]

이행건

(李行健, 1588-1654)    조선조의 문신. 자는 士以, 호는 箕谷, 본관은 전의, 李重基의 아들로 조선후기의 문신이다. 어려서부터 인품이 준걸스럽고 특이하여 상촌 신흠이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5, 6세에 비로소 글을 읽어 경사를 모조리 통달하였고,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그러나 당시 종조부 경준이 적신이 적신의 모함에 죽게 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부모를 모시고 향리로 낙향하여 은둔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

이행원

(李行遠, 1592-1648)    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士致, 호는 西華, 시호는 孝貞, 본관은 전의, 신계현령 李重基의 아들로서 서종면 수입리에서 성장하였다.1610년(광해군 2) 진사가 되고, 1617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자박사를 거쳤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그날 밤 假注書로 숙직하였다가 이귀․심명세․최명길 등이 난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호응하였다. 곧 장유가 교서의 초고를 부르면서 서게 하자 한 자의 착오도 없이 잘 […]

이만웅

(李萬雄, 1620~1661)      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心甫, 호는 夢灘, 본관은 전의, 중추부사 이행건(李行建)의 아들로서 양평 서종면 수입리에서 성장하였다. 1639년(인조 1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어 참봉을 지냈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의정부, 시강원 설서, 사간원 正言 1660년 연안부사, 1661년 황해관찰사를 지냈다. 사후에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    신도비는 서종면 수입리의 앞으로 개울을 바라보는 나지막한 구릉말단에 북향하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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