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병산리

병산리 유물산포지6

屛山里 遺物散布地6 소재지 : 강상면 병산리 768답, 769전 일원시대 : 청동기종류 : 유물산포지      산포지는 병산리 유물산포지 4의 남쪽에 연접해 있는 해발 80.1m의 구릉사면과 곡간부에 해당한다.   현재 산포지의 북동쪽 구릉은 토취장으로 사용되어 절반정도가 절개된 상태이며 남은 부분에도 7동의 비닐하우스가 대규모로 설치되어 형질변경이 되었다.   곡간부의 상부에는 여주~양평간 고속도로 건설공사로 인하여 기반 축대공사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정근옹주

(貞謹翁主, ? -1613)    정근옹주( ? -1613)는 조선 제 14대 왕인 선조의 9女로서 후궁인 정빈민씨의 소생이다. 병조판서를 지낸 김이원의 아들인 김극빈에게 출가하였다. 김극빈은 일선위에 봉해졌다. 묘는 강상면 병상리의 나지막한 구릉상에 남편인 일선위 묘와 동-서로 나란히 하여 동향하여있는데 어느 묘가 옹주 묘인지는 묘비가 없어 확실하지 않다.

윤응선

(尹應善, 1854~1924)      성리학자. 호는 晦堂, 본관은 파평, 尹敎明의 아들, 朴世和의 문인이다. 1854년 강상면 병산리에서 태어났다. 1866년 병인양요를 피하여 할아버지와 함께 충북 청풍면 장선리 방대로 이주하여 살았다. 1885년 함경북도를 유람하고 北靑까지 갔다 돌아왔다. 1889년 천거로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893년 스승 의당 박세화를 장선리에서 만났다.   1896년 의당 명에 따라 의암 유인석 휘하의 의병진을 위문하고, […]

이보원

(李輔元, 1869~?)      독립유공자. 강상면 병산리 출신. 1919년 3·1운동 때에 강하면 사무소 앞에서 최대현·윤기영 등을 중심으로 3월 31일 오후 11시경에 군중 3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하였다. 4월 1일에는 양서면사무소 앞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혀서 90태형(笞刑)을 받고 옥살이를 하였다.   정부에는 고인의 공로를 기리어 199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강상면)

윤종언

(尹宗彦, 1712~1788)      학자. 자는 幼成, 호는 芝谷, 본관은 坡平, 黙齋 尹休徵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773년(영조 49)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전적, 한림원 시교, 봉교, 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 전력하여 영재를 배출시켰다. 비문은 6세손 회당 윤응선이 썼다. 저서에 유고가 1권 가전되고 있다. 묘는 강상면 병산리에 있다. (강상면)

작개

作介 ‘번말’ 또는 ‘밧지울’로도 속칭(俗稱)되며, 마을 앞들에서 제각기 농사를 지으며 산다고 하여 ‘작개(作介)’라 하나 억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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