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의당 명에 따라 의암 유인석 휘하의 의병진을 위문하고, 그 다음해에 서적을 의당이 가 있는 月岳山 계곡 용하당으로 옮겼다. 1900년 강설잡록을 지었고, 1903년 의암 유인석이 주관하는 춘천 가정리 향음주례에 제자들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경서를 공부하는데 전념하였다.
1905년 청풍에서 유림이 향약을 조직하였을 때 도헌으로 추대되어 향약의 절목의 정리하고 독약홀기를 규정하는 등 교화활동에 참여하였다. 이 때 스승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려하였던 것이 발각되어 의당과 함께 문경에 구금되었다가 한성감옥으로 이감되었다가 1906년 4월 감옥에서 6개월 만에 석방되자, 의당을 모시고 용하동으로 돌아왔다.
그 후 용하동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일곡서당을 짓고 강학에 힘쓰다가 1909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로 이주하였다. 여기서 의당의명으로 서간도 풍토를 보기 위해 떠났다가 돌아왔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스승 박세화가 단식자결한 후 이후로는 진천 음성 등지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912년에 스승의 『의당집』을 교열하고 그 해에 충주 오류동(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으로 이주하였다. 1920년에 다시 음성군 삼성면 가산리로 이사하였다. 1924년 가산리 전긍재에서 별세했다.
회당은 공자·주자·율곡·우암을 도통의 계승자로 보고 있어 똑같은 도통을 제시하는 화서학파와는 교분이 두터웠다. 화서학파 강회에 박세화가 가끔 참여한 일이나 회당의 제자 신현국을 금계 이근원의 적전이라고 하는 등, 박세화의 深衣가 화서의 심의와 같아서 화서학파로 보는 이도 있을 정도로 교분이 두터웠다. 저서에 『晦堂集』이 있다. 음성의 충룡사. 제원의 屛山影堂을 제향하고 있다. (강상면)
윤응선
(尹應善, 1854~1924)
성리학자. 호는 晦堂, 본관은 파평, 尹敎明의 아들, 朴世和의 문인이다. 1854년 강상면 병산리에서 태어났다. 1866년 병인양요를 피하여 할아버지와 함께 충북 청풍면 장선리 방대로 이주하여 살았다. 1885년 함경북도를 유람하고 北靑까지 갔다 돌아왔다. 1889년 천거로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893년 스승 의당 박세화를 장선리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