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수곡리

오종개

吾宗家 사창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수곡1리. 원래는 오종가(吾宗家)라고 한다. 경주최씨가 자리 잡고 살면서 집이 늘어났다 하여 오종가(吾宗家)라 하였는데 그 후 타성이 이주하면서부터 오징개라고 전하며 지금은 오징개라고도 호칭하고 있으나 이후 뒷동산에 오동나무가 무성한 후로는 오(吾)자를 오(梧)자로 고쳤다고 한다.

오포

梧浦 오포는 오종개, 넘어오종개, 사창 마을을 합하여 오포(梧浦)라고 한 것이 700여 년 전에 경주최씨(崔氏)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오종(五宗)이 물가에 자리 잡고 사는 곳이라 오포(梧浦)라고 전한다.

철성골

七星谷 마을에 우물이 일곱 개가 있었는데 북두칠성 모양과 같이 위치하고 있다 하여 칠성골(七星谷)이라 전하며 한편 일곱 집이 있었는데 성(姓)이 각기 다르다 하여 칠성(七姓)골이라고도 전한다. 수곡리(水谷里)는 물이 후한 곳으로서 경주 최씨가 25대(代)를 살아오고 있으며 오종(五宗)개에는 1300여년이나 되는 은행나무가 있고 통로 부락에는 수곡서원(水曲書院)이 있는데 권경우가 배향되어 있다. 뒷산은 추읍산이다.

통로골

밤벌에서 안말로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통로골이라 전한다. 한편 옛날 이곳에는 옹기점이 있었는데 통화로를 만들었다 하여 통로(通爐)라고도 전한다.

권경우

(權景祐)      조선초기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子綏이다. 判官 權耋의 아들이며, 대사헌 權景禧와 이조정랑 권경유(權景裕)의 형이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뒤에 예문관 봉교에 승진하여 사관 선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듬해에는 천추사의 검찰관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통사 조종손 등의 밀무역을 검찰한 공로로 4계급 승진하여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어서 홍문관 수찬으로 옮겨 제주경차관으로서 제주도민의 궁핍현상을 지적하고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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