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慶時, 1855-1929) 독립유공자. 지사는 양동면 쌍학리 197번지 출신이다. 경기도 광주에 分院義塾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청운면 용두리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신재원․김종학 등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동년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6월에 출옥하였다. 정경시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출옥하자마자 1920년 6월에 대한독립단 경기도 지단장 한덕리의 권유로 독립단에 가입하여 임시정부의 격문을 […]
카테고리: 양동면
이은모
(李殷模, 1745-1802) 조선조 문신. 자는 子敬, 본관은 덕수, 통덕랑 李渙의 장남으로 1745년 출생하여 백부인 삭녕군수 李渭의 양자로 출계했다. 1768년 생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75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후 정언, 부수찬, 헌납, 교리, 대사간 등을 거쳐 공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02년 8월 4일 별세하니 향년 58세이다. 묘는 양동면 삼산리 금곡이다.
이익진
(李翼鎭, 1703-1779) 조선조 문신. 자는 汝明, 호는 林叟, 본관은 덕수이다. 1703년 병마절제도위 이 당(李簹)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779년 7월 25일 별세하니 수 77세이며 별세 후 이조판서를 증직 받았다. 묘는 여주군 금사면 금사리에 있다.
이희여
(李希呂) 원주이씨 입향조. 자는 春景, 관직이 승사랑, 조산대부이다. 원주의 호장 李申佑의 후손이다. 지평으로 이주하게 된 사연은 알 수 없으나, 선대가 원주 횡성 등지에 살았기에 근처가 되는 지평 양동면 매월리에 낙향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임호연
(林豪淵, 1920- ?) 독립유공자. 양동면 석곡리 437번지 출신이다. 1937년 일본에 건너가 일본대학 전문부 경제과에 다녔다. 학교 재학시설에 일본경차로부터 사상적 요시찰 학생으로 지목되어 수시로 연행되고 조사를 받는 등 많은 고통을 겪었다.1942년경 귀국한 그는 태평양전쟁에서 일제의 패망으로 조국독립이 다가왔음을 일반 군중들에게 알리는 한편, 동지를 규합하여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조직한 결사대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벌려오던 중 1942년 5월, 일본경찰에 […]
이성모
(李聖模, 1715~1789) 조선조 문신. 자는 汝仰, 본관은 덕수, 1715년 참의 李溟의 장남으로 양동에서 출생했다. 1740년 진사시 합격한 후 의능참봉, 동부봉사, 평시서 봉사, 종부시 직장, 안성군수, 성천부사를 거쳐 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789년 9월 17일 별세하니, 1798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는 양동면 쌍학리 백아곡에 있다. (양동면)
이안성
(李安性, 1554~1613) 조선조 문신. 자는 養伯, 본관은 덕수, 1554년 5월 11일 승지 이 섭(李涉)의 장남인데, 택당 이 식(李植)의 아버지가 된다. 17세인 1570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 상을 마치고 전남 고부에서 서울 집으로 이주한 후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46세인 1599년 접대도감 낭관이 되었고 1600년 군자감 주부를 거쳐, 1602년 1월 20일 상의원 별좌에 […]
이정자
(李貞子) 효부. 李貞子는 전주 이씨로 시할아버지와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는데, 25세에 불행하게도 남편이 죽고 홀로 시조부모를 봉양하였다. 시어머니 상을 당해서는 남편을 대신해서 매달 초하루와 보름 삭망일에 비바람이 부나 춥거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성묘를 하며 상례를 다하였다. 그 후에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를 효성으로 모셨고, 두 분의 상례 때에도 시어머니 때와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슬픔을 다하였으니, 그 기간이 7년이었다. […]
이노춘
(李魯春, 1752~1816) 문신. 자는 君正, 본관은 덕수이니, 1752년 돈지돈녕 부사 李龍模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1773년 생원이 되었고, 1779년 유생강제에서 製居首가 되었으며, 1880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에 등용되었다. 1782년 이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부응교에 올라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정조 초에 『弘文館志』를 편찬하여 1784년에 간행했다. 1784년 홍문관 응교에 올랐으나 채제공을 탄핵하다가 평안도 雲山에 유배되어 두 달 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