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魯春, 1752~1816) 문신. 자는 君正, 본관은 덕수이니, 1752년 돈지돈녕 부사 李龍模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1773년 생원이 되었고, 1779년 유생강제에서 製居首가 되었으며, 1880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에 등용되었다. 1782년 이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부응교에 올라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정조 초에 『弘文館志』를 편찬하여 1784년에 간행했다.
1784년 홍문관 응교에 올랐으나 채제공을 탄핵하다가 평안도 雲山에 유배되어 두 달 만에 풀려났으나 다시 흑산도에 안치되었다. 1799년 풀려나 좌의정 이병모의 건의로 이조참의가 되고 이듬해 예조참판, 승지를 지냈다. 이해 순조가 즉위하자 대사간,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1802년 실록청 당상이 되어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어 성균관 탄핵을 받고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1809년 풀려났다. 1816년 11월 11일 별세하니, 청주시 서면 담봉에 장사지냈다. (양동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