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쌍학리

쌍학리 고분군

   양동면 쌍학리에 있는 단석초등학교 일원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서쪽의 산지(해발 397.8m)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나지막한 구릉 말단부의 남사면으로 해발 120m 정도이다. 동쪽에는 남북방향으로 흐르는 삼산천과 그 지류변에 형성된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유적은 1957년 단석초등학교 교사 건축시 발견된 것으로 일찍이 학계에 소개된 바 있다. 당시 새로운 교사를 짓기 위해 구릉의 완사면을 깎아내는 과정에서 […]

쌍학리 유물산포지2

雙鶴里 遺物散布地2 소재지 : 양동면 쌍학리 산13임, 산12임시대 : 청동기종류 : 유물산포지   쌍학리 유물산포지 1이 위치한 구릉의 동사면 일대에 형성된 산포지이다.현재 동쪽 능선의 평탄한 곡부는 밭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무문토기편과 두형토기편, 삼국시대의 경질토기편이 수습되었다.곡부를 포함한 구릉전체에 청동기~삼국시대의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향후 이 일대에 대한 개발행위가 이루어질 경우 반드시 문화유적 조사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이성모

(李聖模, 1715~1789)      조선조 문신. 자는 汝仰, 본관은 덕수, 1715년 참의 李溟의 장남으로 양동에서 출생했다. 1740년 진사시 합격한 후 의능참봉, 동부봉사, 평시서 봉사, 종부시 직장, 안성군수, 성천부사를 거쳐 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789년 9월 17일 별세하니, 1798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는 양동면 쌍학리 백아곡에 있다. (양동면)

이안성

(李安性, 1554~1613)      조선조 문신. 자는 養伯, 본관은 덕수, 1554년 5월 11일 승지 이 섭(李涉)의 장남인데, 택당 이 식(李植)의 아버지가 된다. 17세인 1570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 상을 마치고 전남 고부에서 서울 집으로 이주한 후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46세인 1599년 접대도감 낭관이 되었고 1600년 군자감 주부를 거쳐, 1602년 1월 20일 상의원 별좌에 […]

이정자

(李貞子)    효부. 李貞子는 전주 이씨로 시할아버지와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는데, 25세에 불행하게도 남편이 죽고 홀로 시조부모를 봉양하였다. 시어머니 상을 당해서는 남편을 대신해서 매달 초하루와 보름 삭망일에 비바람이 부나 춥거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성묘를 하며 상례를 다하였다.   그 후에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를 효성으로 모셨고, 두 분의 상례 때에도 시어머니 때와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슬픔을 다하였으니, 그 기간이 7년이었다. […]

전이란

(全伊蘭)    효부. 全伊蘭은 정선인 全錫鉉의 딸로 李炯에게 출가하였다. 집안이 매우 가난한데다 26세에 남편이 죽고 홀로되어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개가하지 않고, 매일 至誠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게다가 시어머니가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했다. 매일 날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머니를 홀로 두고 나갈 수가 없어서 혹은 업고 다니고, 혹은 이웃에 맡기고 볼일을 보곤 다시 업어오곤 하였다.   […]

정경시

(鄭慶時, 1855-1929)    독립유공자. 지사는 양동면 쌍학리 197번지 출신이다. 경기도 광주에 分院義塾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청운면 용두리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신재원․김종학 등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동년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6월에 출옥하였다. 정경시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출옥하자마자 1920년 6월에 대한독립단 경기도 지단장 한덕리의 권유로 독립단에 가입하여 임시정부의 격문을 […]

이기진

(李箕鎭, 1687~1755)      조선조 문신. 자는 君範, 호는 牧谷, 시호는 大憲, 본관은 德水, 양구현감 李簹의 아들, 백부인 삼척부사 蕃에게 입양되었다. 권상하의 문인이다. 1717년(숙종 43) 진사가 되고, 이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 홍문관에 재직하고, 1721년(경종 1) 헌납으로 王世弟에 책봉된 연잉군(후에 英祖; 1694~1776)에 대해 흉언을 퍼뜨린 유봉휘의 처벌을 주청하다가 신임사화로 파직되었다.   1725년(영조 1) 영조가 즉위하자 등용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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