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李箕鎭, 1687~1755)
 
   조선조 문신. 자는 君範, 호는 牧谷, 시호는 大憲, 본관은 德水, 양구현감 李簹의 아들, 백부인 삼척부사 蕃에게 입양되었다. 권상하의 문인이다. 1717년(숙종 43) 진사가 되고, 이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 홍문관에 재직하고, 1721년(경종 1) 헌납으로 王世弟에 책봉된 연잉군(후에 英祖; 1694~1776)에 대해 흉언을 퍼뜨린 유봉휘의 처벌을 주청하다가 신임사화로 파직되었다.
   1725년(영조 1) 영조가 즉위하자 등용되어 홍문관 교리가 되고 이듬해 시독관이 되어 신임사화를 일으킨 소론들에 대한 懲討를 철저히 하여 의리를 밝힐 것을 극언하여 한때 영조의 신임을 잃기도 했다. 이해 승지를 지내고 이조 참의를 거쳐 1727년 부제학 등을 역임하고 강화부 유수가 되었으나 왕세자 관례 때에 封箋文을 빠뜨린 사건으로 파면 당하였다.
   고향에 머물고 있던 중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급거 상경하여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난이 평정된 뒤에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1729년 다시 기용되어 함경도 관찰사,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형조 판서, 경기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714년(영조 17) 판의금부사, 이조판서를 지내고 1744년 홍주목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다시 경기도 관찰사, 판의금부사를 지내고 이어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1749년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51년 광주부 유수로 한봉도를 지어 올렸고, 판돈령부사에 이르렀다. 저서에 『牧谷集』이 있다. (양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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