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로 생가

李恒老 生家
소새지 : 서종면 노문리 536-6
시   대 : 조선
종   류 : 주거건축<반가>
 
352번 도로에서 수입교를 건너 86번 도로로 진입하여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길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말기의 성리학자인 李恒老가 살던 집으로, 조선말기 선비의 살림집 모습을 잘 보여주는 가옥이다.
생가는 약 200년 전 공의 부친 때 지은 집으로 공이 태어나서 일생을 보낸 곳이며, 사랑채 ‘청화정사’는 양헌수·김평묵·최익현·유인석 등 많은 선비들이 공의 가르침을 받던 곳이다.
현존하는 건물은 안채 15칸이나 현재 생가 동편에 접하여 신축과 개축공사가 이루어졌다.
생가는 남서향을 정면으로 하고 있으며 안채에는 蘆山精舍 라는 현액이 걸려있다.
이항로(1792~1868)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자는 而述, 호는 華西, 1808년(순종 8) 과거에 합격했으나 포기하고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전념하며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하였다.
고종1년(1864) 趙斗淳의 천거로 掌苑署別提가 되었다.
그 후, 全羅道都事, 掌令 등을 거쳐 1866년 丙寅洋擾때 同副承旨가 되어 主戰論을 주장하였다.
이어 工曹參判에 승진, 經筵官이 되어 景福宮 재건의 중지와 聚斂의 시정을 촉구하는 등 최초로 대원군의 정책에 반대하여 배척을 받았다.
시호는 文敬으로, 內部大臣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華西文集 , 華東合編綱目 , 蘗溪雅言 , 周易釋義 , 朱子大全集箚疑輯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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