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웅(李萬雄) 신도비

□ 소 재 지 : 서종면 수입리 산9-1
□ 시     대 : 조선시대
 
   서종면소재지에서 363번 도로를 따라 외서면 방향으로 5.5km 정도 가면 수입초등학교가 나온다. 여기서 86번 국도를 따라 1k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수입리 내수입마을 진입로가 나온다. 이만웅 신도비는 그 길을 따라 800m 정도 더 들어간 왼쪽 언덕에 위치한다.
   이만웅(李萬雄, 1620~166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심보(心甫), 호는 몽탄(夢灘)이다. 중추부사 이행건(李行健)의 아들로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에서 성장하였다. 1650년(효종 10) 문과에 급제한 후 통정대부에 올라 병마수군절도사를 지냈고,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세상을 떠난 후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 전의 이씨 족보에 의하면 지문(誌文)은 박세채(朴世采)가 찬하고, 묘표(墓表)는 김석주(金錫冑)가 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만웅 신도비(전체높이 296cm, 폭 76.5cm, 두께 37.5cm)는 비좌와 비신,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좌는 돌이끼가 낀 채 검게 산화되어 있으며 안상문과 복련문을 화려하게 조각하여 놓았다. 백색 대리석의 비신은 앞면에 비문이 있는데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비문이 뚜렷하다. 앞면 상단에 세로로 “守黃海道觀察使 贈吏曹參判 李公神道碑銘”이라 전액했고, 비제(碑題)는 “有明朝鮮通政大夫 守黃海道觀察使 兼兵馬水軍癤度使巡察使 贈嘉善大夫 吏曹參判兼 同知經筵義禁府事弘文館提學同知春秋館成均館事五衛都摠府副摠管世子左副賓客 李公神道碑銘 幷序”라 음각되어 있다. 송시열(宋時烈)이 비문을 짓고, 김창협(金昌協)이 글씨를 쓰고, 이만웅의 큰아들인 이징하(李徵夏)가 전액을 썼다. 건립시기는 “崇禎甲申 後三二年 乙卯”에 완성하고자 했으나 이루지를 못하고, 다시 24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에야 둘째아들인 이징명(李徵明)이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완성했다고 비문 말미에 밝히고 있다. 묘는 서종면 수입리 전의 이씨 선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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