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 묘


□ 소 재 지 : 옥천면 아신리 산24-3
□ 시     대 : 조선시대
 
   옥천면소재지에서 351번 지방도로를 따라 0.25km 가면 아신교가 나오는데 여기서 아신리로 가는 작은 길을 따라 1km 가면 옥천면 아신리에 이른다. 정지연 묘는 남향의 구릉지에 있는 동래 정씨의 묘역에 위치한다.
   정지연(鄭芝衍, 1572~1583)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연지(衍之), 호는 남봉(南峰)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봉상시정(奉常寺正) 정유인(鄭惟仁)의 아들로 이중호(李仲虎) ․ 이황(李滉) ․ 서경덕(徐敬德) ․ 성제원(成悌元)의 문하에서 배웠다. 1549년(명종 4)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뒤 1566년(명종 21) 선조가 세자로 있을 때 이황의 추천으로 왕손사부가 되어 하성군(河成君) 이균(李鈞)을 보필하였다. 1569년(선조 2)에 의금부도사로 재직시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청론을 벌였다는 칭송을 들었다. 1574년(선조 7) 대사성 ․ 대사간 ․ 대사헌을 거쳐 1518년(선조 14) 우의정에 올랐다. 1583년(선조 16) 병이 깊어지자 관직엣 물러날 것을 여러 번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고 병중에 있으면서도 글로 국사를 논의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임금이 대신할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자 이산해(李山海)를 천거하였고, 또 유소(遺疏)로 이이(李珥)를 추천하였다.
   정지연 묘는 중간에는 비좌와 비신 및 이수가 하나의 돌로 된 묘비(전체높이 132cm, 폭 53cm, 두께 16cm)가 있는데 비신은 전면에만 비문이 있으며 중앙부에 가로로 길게 균열이 있다. 비신 전면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右議政兼 領經筵事監春秋館事贈諡 公鄭芝衍之墓” 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음기는 없다. 이수는 화문을 화려하게 조각하였으며 묘비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 망주석과 문인석 등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좌측에는 부인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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