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리 효자정문

(孝子旌門)
 □ 소  재 지 : 지평면 송현리 813
 □ 시      대 : 조선 고종 19년(1882) 명정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21호
 
   지평면 소재지에 있는 지평역 사거리에서 331번 도로를 따라 북으로 약 5km 지난 곳에 산현마을이 있다. 정문은 도로 서쪽의 산현마을 어귀에 있다.
   이 장려는 효자 강릉최씨 최광악(崔匡岳)과 최병배(崔秉培) 부자의 양대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이러한 사실은 1899년 편찬된 『지평현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정려는 1882년(고종 19)에 지평현의 유림 73명이 임금께 상소하여 명정받아 지평현감이 직접 감독하여 9월에 완공되었다.
   최광악(崔匡岳, 1756~1816)의 자는 사고(士高 ), 본관은 강릉으로 아버지 최흥후(崔興垕)와 어머니 문화 유씨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병환에 걸린 위독한 노모가 닭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4km 떨어진 월산리까지 가서 닭을 구해 소원을 풀어드렸고, 또 며칠 후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붕어 세 마리를 낚아 모친을 봉양하였다고 한다.
   최병배(崔秉培, 1778~1856)는 최광악과 성주 이씨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최광악이 세상을 떠나자 집에서 약 2km 떨어진 묘소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는데, 그 효성이 지극한 나머지 호랑이도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식사 때마다 등에 업어 왕래케 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
   정문은 팔작지붕에 삼문(三門) 형태를 갖추고 있는 목조건물이다. 이 정문의 좌측실은 마루를 깐 낮은 누각으로 꾸며져 있는데 전체적인 건물규모는 정면 7.19m, 측면 2.43m이다. 중앙의 출입문 상단에는 최광악이 고종 19년(1882)에 명정 받았음을 나타내 주는 “孝子贈朝奉大夫崔匡岳之門高宗十九年壬午九月日 命旌” 이라고 새겨진 현판(가로 175cm, 세로 38cm)과 정문의 우측에도 같은 해 최병배도 명정 받았음을 나타내는 “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崔秉培之門高宗九年壬午九月日 命旌 ”이라 새겨진 현판(가로 175cm, 세로 35cm)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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