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신선생 신도비

□ 소  재 지 : 서종면 수입리 산401-9
□ 시      대 : 조선 광해군 13년(1621) 건립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10호
 
   이제신 신도비는 양수에서 청평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12.5km 정도 가면 나타나는 수입리 마을 입구, 수입교를 건너기 전 도로 북측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제신(李濟臣, 1536~1583)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몽응(夢應), 호는 청강(淸江),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전의 이씨 양평지역 입향조인 병마절도사 이문성(李文誠)의 아들이자 조 욱(趙昱)의 문인으로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한 뒤 검열(檢閱), 전적(典籍), 형조․공조․호조의 좌랑(佐郞),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사은사(謝恩使)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예조정랑으로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을 겸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울산부사, 정언(正言), 군기시첨정(軍器侍僉正), 지평(持平), 진주목사를 거쳐 1582년(선조 15)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시문에 능했고 글씨를 잘 써 서예가로도 이름이 높았으며 저서에는 『청강집(淸江集)』이 있다. 1603년(선조 36)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선조때에 청백리에도 녹선되었다. 가평(조선시대 양평지역)의 미원서원(迷源書院)과 청원 송천서원(松泉書阮), 울산 학호서원(鶴湖書阮)에 제향되었다.
   신도비는 이제신이 세상을 떠난 38년 후인 1621년(광해군 13)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이제신의 사위인 신흠(申欽)이 글을  짓고, 최립(崔岦)이 글씨를 썼다. 신도비(전체높이 311cm, 폭 93cm, 두께 26cm)의 형태는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고 있으며, 비신은 대리석이다. 비좌상면은 2단의 받침이 모각되어 있으며, 이수는 서로 마주보는 용문과 괴운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신도비가 있는 외수입리에서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수입3리(내수입리) 508번지에는 이제신의 재실인 ‘녹수재(綠水齋)’가 있으며, 재실에서 북으로 약 200m 떨어진 산록에는 이제신의 묘소가 정비되어 있다. 이제신의 묘는 새로이 단장되었는데 묘 앞에는 월두형으로 비좌를 갖춘 구비(전체높이 154cm, 폭 63cm, 두께 11cm)와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고, 묘 옆에는 대리석재의 신비가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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