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록선생 신도비

□ 소  재 지 : 용문면 조현리 산48-13
□ 시      대 : 조선 후기, 1994년 양근리에서 이건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1호
 
   용문면소재지에서 6번 도로를 타고 홍천 방향으로 5km 정도 가서 331번 도로를 차고 다시 2km 정도 가면 4번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타고 2km쯤 가면 조현리가 나오는데 이유록 신도비는 조현리의 전주 이씨 묘역 입구에 있다.
   이유록(李綏祿, 1564~162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유지(綏之), 호는 동고(東皐), 본관은 전주(全州)로 첨정(僉正) 이극강(李克綱)의 아들이다. 이유록은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자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李敬與)이다.
   1586년(선조 19)에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서북면(西北面)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으로 활약했다. 이후 광주목사 ․ 봉산군수 ․ 상주목사 등을 역임하면서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 1617년(광해군 9)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에 반대, 사직하고 고향인 양근으로 은퇴하여 이원익 ․ 정엽(鄭曄) 등과 교류했으며, 뒤에 여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다. 1620년(광해군 12)에 세상을 떠났으며 신도비문에 의하면 양근군 백운봉 아래(현 양근리)에 장례를 치렀다 한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이유록 신도비(전체높이 273cm, 폭 81cm, 두께 20cm)는 1994년에 양근리 192번지에서 현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비는 장방형의 백색 화강암으로 비좌와 비신 및 쌍용의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좌는 상부를 부드럽게 처리하였으며 이수는 검게 산화되어 있는데 전면에는 구름무늬와 두 마리 용이 중심부위의 여러 곳에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비신은 전 ․ 후면에 비문이 있으며, 상단에 횡으로 “贈領議政李公神道碑銘”이라 했고, 비제(碑題)는 “有明朝鮮國贈領議政神道碑銘幷序”라 음각되어 있다. 건립연기가 없어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다.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찬하고, 윤문거(尹文擧)가 글씨를 썼으며, 허목(許穆)이 전(篆)을 했다. 비문에는 이유록의 약력이 언급되었으며 선정을 베푼 일화와 함께 세상을 슬퍼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독송하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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