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평 신도비

 □ 소 재 지 : 용문면 삼성리 산142-1
 □ 시     대 : 조선시대
 
   용문면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4km 정도 가면 삼성교가 나온다. 여기에서 6번 국도를 따라 다시 4km 정도 가면 삼성리 등골마을에 이른다. 성세평 신도비는 삼성리 등골마을 내 등골낚시터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500m 정도 가면 계곡의 개울변에 있다.
   성세평(成世平, 1516~1690)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중(正仲)이다. 종부시정(宗簿寺正) 성희주(成希周)의 아들이며, 처는 노사 노공좌(盧公佐)의 딸이다. 1561년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50여 세에 비로서 승문원에 등용됨으로써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전적(典籍) ․ 어천찰방(魚川察訪)을 지냈고 그 뒤 횡성현감 ․ 금산군수 ․ 성주목사 등을 거쳐 군기시정 ․ 사재감정 ․ 장악원정 ․ 통례원좌통례를 역임하였다. 원주목사로 나갔다가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선조 23년(1590)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병사하였다. 세상을 떠난 후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성세평 신도비(전체높이 270cm, 너비 62cm, 두께 31cm)는 이정구(李廷龜)가 지었으며, 남태제(南泰齊)가 전했다. 비문이 심하게 마모되어 서자는 알기 어렵다. 평평하게 다듬은 자연 암반을 비좌대용으로 하여 옥개석을 갖추고 있으며, 비신은 백색 대리석으로 전 ․ 후 ․ 우 3면에 비문이 있다. 전 ․ 후면에 걸쳐 횡으로 “江原道觀察使 贈左贊成 成公神道碑名”의 전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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