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하 묘

李重夏 墓
소재지 : 양평읍 창대리 산82
시   대 : 조선
종   류 : 조선민묘
 
37번 도로를 타고 가다 대명리조트 가기전 100m 지점의 왼쪽에 대한불교조계종 갈월사 가는 소도로로 진입하여 약 500m 정도 올라가면 결전아파트가 나온다.
이중하 묘는 이 아파트의 입구 야산 중턱에 자리한다.
묘는 단분합장이고, 혼유석·상석·향로석·주준석·망주석 등의 석물을 갖췄다.
상석의 전면에는 ‘有韓正憲大夫掌禮院卿完山李公重夏之墓 配貞夫人昌寧曺氏부左’라 새겨 피장자의 신분을 밝혔다.
상석의 아래에는 북돌 2기가 받치고 있는데, 북돌의 전면에는 문고리 문양을 조각하였다.
향로석 및 주준석은 사각향탁이다.
망주석은 별다른 문양을 조각하지 않은 형태이다.
상석의 크기는 너비 128㎝, 두께 87㎝, 높이 26㎝이고, 북돌은 지름 35㎝이다.
망주석은 총고 124㎝이다.& 이중하(1846∼1917)는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全州, 자는 厚卿, 호는 圭堂·坦齋이고, 寅植의 아들이다.
고종 19년(1882) 문과에 급제하였고, 1885년 土門勘界使로서 청국 측 대표 德玉·賈元桂·秦瑛 등과 함께 백두산에서 백두산정계비와 土門江地界를 심사하였다.
또 1887년 다시 토문감계사가 되어 회담을 재개하였는데, 청국 측은 조선 측의 주장을 거절, 위협하였으나 그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은 줄일 수 없다.”하며 끝내 양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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