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 양헌수 묘


□ 소 재 지 : 단월면 덕수리 산59-3
□ 시    대 : 조선 고종대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13호
 
   단월면소재지에서 6번 도로를 타고 홍천 반향으로 1.5km 가다가 70번 도로로 바꾸어 2km 정도 들어가면 덕수리에 이른다. 양헌수 묘는 이 마을에 있는 백동저수지에서 북쪽으로 600m 정도 올라간 산록에 위치한다.
   양헌수(梁憲洙, 1816~1888)는 조선 말기의 무신으로 자는 경보(敬甫), 본관은 남원으로 양종임(梁鐘任)의 아들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1848년(헌종 14)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고, 철종 때에는 참상관에 올랐다. 1865년(고종 2)에 제주목사로 부임되어 전판관 백기호(白基虎)의 탐학을 징계하도록 하여 제주도민의 칭송을 받았고, 선정을 베풀어 임기를 일년 더 연장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는 순무천총(巡撫千摠)으로 정족산성에 침입한 프랑스 해군을 격파한 뒤 한성부 좌윤에 특진되었다. 이후 어영대장, 금위대장, 포도대장에 임명되었고,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당시에는 이용희 등과 함께 척화론을 끝까지 주장하였다. 이후 지삼군부사, 공조판서를 거쳐 1887년 독련사가 되었다. 1888년 세상을 떠났는데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의 장례를 치를 적에 강화도민들이 제문(祭文)을 가지고와 부의하며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양헌수는 보수적인 척화론자로, 문무를 겸비한 유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저서로 『하거집(荷居集)』이 있다.
   묘는 정부인(貞夫人) 고성 이씨(固城李氏)와 합장묘로 묘비 이외에 다른 석물은 없다. 묘비는(높이 131cm, 폭 51cm, 두께 50cm) 아들 양주겸(梁柱謙)이 1934년 5월에 건립한 것으로 앞면에는 “正憲大夫 刑曹判書禁衛大將兼儀禁府三軍俯訓鍊院事五衛都摠府都摠管經筵特進官贈諡忠莊南原梁公諱憲洙之墓 貞夫人固城李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신도비는 용문면 광탄리 택승정 옆에 양평군과 양씨 문중에 의해 1996년 건립해 놓았다. 신도비문은 1889년에 한장석(韓章錫)이 지은 것으로 제주목사 당시의 선정내용과 병인양요 때의 활약상과 함께 몇 가지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한편 강화도에는 1873년(고종 10)에 강화도 주민들이 세운 그의 전승기념비(巡撫千摠 梁公 憲洙 勝戰碑)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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