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지선생 묘

 □ 소  재 지 : 강하면 왕창리 산27
 □ 시      대 : 조선시대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30호
   
   강하면소재지에서 88번 도로를 따라 광주방향으로 2km 정도 가면 강하면 동오리로 연결되는 마을도로가 나온다. 김자지의 묘는 이 길을 따라 남쪽으로 약 2km 들어가 능곡교를 건너 야산 자락에 위치한다.
   김자지(金自知, 1367~1435)는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원명(元明), 호는 일계(逸溪),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밀직제학(密直提學) 김도(金濤)의 장자로 세종대의 문신인 김여지(金汝知)의 형이다. 1385년(고려 우왕 11)에 문과에 급제한 뒤 조선 태종대에 형조참의,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1420년(세종 2)에는 대사헌에 올랐다. 그 뒤 원주목사, 평안도관찰사에 이어 세종 10년에는 형조판서가 되었으며 만년에는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를 역임하였다. 특히 대사헌 재직시 세도공신(勢道功臣)을 탄핵하기 위해서 상소를 다섯 차례나 올린 일은 유명하다. 그는 성품이 중후하고 총명하여 음양(陰陽), 복서(卜筮), 천문, 지리, 의학, 음율 등에 박학한 학자였다. 또한 그는 배불론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상(喪)을 『주자가례』에서 따르도록 유언할 정도였다고 한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김자지 묘는 부인인 정부인(貞夫人) 평양 조씨(平壤趙氏)와 쌍분(雙墳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를 비롯하여, 상석, 향로석, 망주석 등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묘비(높이 145cm, 폭 56cm, 두께 28cm)는 근래에 건립한 것으로 옥개석과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재질은 오석(烏石)이다. 비의 앞면에는 “正憲大夫 刑曹判書 贈諡文靖 金公自知墓 雙節貞夫人 平壤趙氏祔左”라 음각되어 있다. 김자지의 묘 오른쪽으로 동생인 김여지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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