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근선생 묘 및 신도비


 □ 소 재 지 : 양평읍 도곡리 산37
 □ 시    대 : 조선 숙종 16년(1690) 신도비 건립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2호
 
   양평읍소재지에서 여주 방향으로 4.5km 정도 가다보면 왼쪽으로 도곡리로 가는 작은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8km 정도 들어가면 왼쪽으로 신도비가 나온다. 묘역 진입로를 따라 120m 정도 떨어진 곳에 묘가 위치해 있다.
   조공근(趙公瑾, 1547~162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회보(懷甫), 호는 소옹(梳翁)이고,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홍문관 전한(典翰) 조덕원(趙德源)의 아들로 1592년(선조 20)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직서(社稷署) 참봉(參奉)으로 종묘(宗廟)의 신주를 모시고 피난하여 영변에 봉안케 하였으며, 분조(分朝)가 설치되자 광해군을 시종하였고, 그 공으로 1612년(광해군 4) 위성공신에 녹훈되고, 한흥군(漢興君)에 봉해졌다. 1618년(광해군 10)에 인목대비가 폐위되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양근(楊根, 지금의 양평)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 때의 훈작이 모두 삭훈되어 그의 공신록도 깎였으나 임진왜란 때 종묘의 신주를 모신 공로가 참작되어 1672년(인조 5)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조공근의 묘는 정부인 풍천 임씨와 합장되어 있으며, 봉분 주위에는 높은 호석이 돌려져있다. 묘 중앙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고, 묘 앞 좌우에는 묘비와 함께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2기인데 좌측 원래의 구 묘비(전체높이 121cm, 폭 59cm, 두께 17.5cm)는 1636년(인조 14)에 세워진 것이고, 우측의 신 묘비(전체높이 164cm, 폭 55cm, 두께 28cm)는 1963년 3월에 개수한 것이다.
   신도비(전체높이 209cm, 폭 87cm, 두께 26cm)는 1690년(숙종 16)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조경(趙絅)이 짓고, 이삼달(李三達)이 글씨와 전액을 썼다. 신도비는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는데, 비의 재질은 대리석이며, 특히 이수부의 조각이 정교하고 화려하다. 제액(題額)은 “有明朝鮮國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兼五衛都摠府都摠管 梳翁趙公神道碑銘竝書”라 음각되어 있으며, 음기 말미에 “崇禎十七年 甲申後四十七年庚午四月日立”이라 하여 건립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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