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훈 묘

 □ 소 재 지 : 강상면 화양리 산34-1
 □ 시     대 : 조선 후기
 
   강상면소재지에서 44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2.5km 정도 가면 화양리 연양마을에 이른다. 윤승훈 묘는 이 마을 북서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200m 정도 올라간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윤승훈(尹承勳, 1549~161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술(子述), 호는 청봉(晴峯),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의 아들이며, 성호문(成好問)의 사위이다. 양평군 강상면에서 우거하였다. 1573년(선조 6) 문과에 급제한 후 1592년 임진왜란 때 응교로서 선유어사(宣諭御使)를 겸하여 전란의 뒷수습에 공을 세워 1594년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고, 곧 이어 형조참의, 서로조도사(西路調度使)가 되었다. 이때 번호(蕃胡)가 난을 일으키자 도벌하여 그 공로로 정헌대부(正憲大夫)의 품계에 올랐다. 호조참판, 대사헌을 거쳐 1597년(선조 30)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 후 병조판서를 거쳐 1601년 우의정으로 승진되었으나, 이듬해 이항복을 신구(伸救)하려다 삼사의 탄핵으로 면직되었다. 이후 다시 기용되어 1603년 좌의정에 이어 1604년 영의정이 되었으나 곧 신원되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묘는 정경부인 창녕 성씨와의 합장묘로 묘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묘비(전체높이 165.5, 폭 상 58.5cm ․ 하 54cm, 두께 19cm) 전면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尹公之墓 貞敬夫人昌寧成氏祔左”라 음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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