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휘 묘

□ 소 재 지 : 옥천면 용천리 산30-2
□ 시     대 : 묘비-조선 순종 2년(1908) 건립
 
   옥천소재지에서 351번 도로를 따라 가평군 방향으로 5km 정도 가면 용천리 설매재마을이 나온다. 유봉휘 묘는 설매재 사슴농원의 왼편 구릉에 있는 문화유씨 묘역 내에 있다.
   유봉휘(柳鳳輝, 1659~172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계창(季昌), 호는 만암(晩庵), 본관은 문화(文化)로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의 아들이다. 1699년(숙종 25) 문관에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修撰) ․ 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하고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사직으로 있으면서 노론이 세제(世弟, 영조) 책봉을 주장하자 이를 반대하였으며, 이어 세제의 대리청정이 실현되자 소론의 영수로서 대리청정의 부당함을 극간하여 마침내 이를 철회시키고 노론을 실각시켰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한 후 탕평책으로 노론 소론의 연립정권이 수립될 때 우의정에 올랐다. 이어 소론 사대신의 한 사람으로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신임사화(辛壬士禍)를 일으킨 주동자라는 노론의 탄핵으로 함경북도 경흥(慶興)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후 관작이 복구되었으나 1755년(영조 31) 다시 반역죄로 추형(追刑) 당하였다. 소론 강경파에 속하여 노론의 탄압에 적극적이었으므로 노론 집권 후 신원되지 못했다.
   묘는 정경부인 함안조씨(咸安趙氏)와의 합장묘로서 묘 앞에는 상석, 묘비, 향로석, 망주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묘비(전체높이 208cm, 폭 41.5cm, 두께 38cm)는 비좌 ․ 비신 ․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좌는 백색화강암에 상부를 말각하였다. 비신은 오석으로 전면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俯左議政贈諡忠靖 柳公謂鳳輝之墓 貞敬”의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외종 5세손 여규형(呂圭亨)이 비문을 짓고, 7세손 유한정(柳漢鼎)이 글씨를 썼다. 옥개석은 팔작지붕으로 비좌 및 비신의 규모에 비해 화려한 지붕장식 조각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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