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순옹주 묘


□ 소 재 지 : 옥천면 신복리 산303
□ 시     대 : 조선시대
 
   옥천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km 정도 가면 신복1리 원통이마을에 이른다. 혜순옹주 묘는 이 마을의 북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혜순옹주(惠順翁主)는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과 그의 후궁 경빈 박씨(敬嬪朴氏)의 소생으로 김헌윤의 아들 김인경(金仁慶)에게 출가하였다. 남편인 김인경(金仁慶, 1514~158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혜순옹주와 결혼하여 중종 17년(1522) 광천위(光川尉)에 봉해졌다.
   1527년 기묘사화 때 피해자인 사림파의 김안로(金安老)가 기묘사화의 주동자였던 심정(沈貞) 등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이며 중종의 맏사위인 희(禧)를 사주하여 이른바 작서(灼鼠)의 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처음 누구의 처사인지 모르다가, 결국 무격을 좋아했던 김인경의 장모 경빈 박씨(敬嬪朴氏)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아들 복성군(福城君) 미(嵋)와 함께 서인이 되어 쫓겨났다. 이때 김인경도 연좌되어 상주로 장배(杖配)되었고, 1533년에는 부인 혜순옹주마저 서인으로 폐출되어 경상도 상주로 유배되었다. 1537년에 관작이 복구되었고, 그뒤 원종공신에 봉해졌는데 종실과 부마들만이 모여 벌인 백일장에서 장원, 통헌대부(通憲大夫)에 가자되었다.
   묘 중앙의 묘비(높이 141.5cm, 폭 63.5cm, 두께 19cm)는 비좌 ․ 비신을 갖추고 있는데, 백색 화강암의 비좌는 마모가 심하다. 비신은 전 ․ 후면에 비문이 있는데, 전면에 “通憲大夫光川尉金公之墓 惠順翁主祔左”라 음각되어 있다.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있고 묘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상이 각 한 쌍씩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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