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경선생 묘


 □ 소 재 지 : 양서면 부용리 산35-1
 □ 시    대 : 신도비-조선 선조 14년)1581) 건립, 1962년, 1984년 중건
 □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 96호
 
   양서면 소재지에서 1번 국도를 따라 3km 정도 가다보면 오른쪽에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00m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이준경 신도비가 있고, 묘는 약 50m 더 올라간 능선 정상에 있다.
   이준경(李浚慶, 1499~1472)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원길(原吉), 호는 동고(東皐), 남당(南堂), 홍련거사(紅蓮居士)이며,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홍문관수찬 이수정(李守貞)의 아들로, 신승연(申承演)과 황효헌(黃孝獻)에게서 학업을 닦고, 이연경(李延慶)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웠다.
   1531년(중종 26)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부수찬으로 기묘사화 때 죄를 받은 선비들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김안로(金安老) 일파의 미움을 사서 한때 파직되기도 하였다. 1537년(중종 32) 다시 등용되어 한성부 판윤, 대사성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1550(명종 5) 영의정 이기의 모함으로 다시 보은에 유배, 이듬해 풀려났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565년(명종 20) 영의정에 올랐다. 선조 때에는 원상(院相)으로 국정을 보좌하면서 기묘사화로 죄를 받은 조광조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또한 을사사화로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한 노수신(盧守愼) 등의 인재를 석방하여 등용하였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며 선조묘정(宣祖廟廷)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동고유고(東皐遺稿)』, 『조선풍속(朝鮮風俗)』등이 있다.
   이준경의 묘는 부인인 풍산 김씨와의 합장묘로 호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장명등 그리고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근래에 세운 것인데, 원래의 묘비는 노수신이 찬하여 1585년(선조 18)에 건립한 것으로 마모가 심하여 현재는 수원대학교 박물관에 이관되어 있다. 묘소 입구에 위치한 신도비(전체높이 156cm, 폭 55cm, 두께 25cm) 역시 1581년 세워진 후 세 번째 조성된 것이다. 원래 1581년 노수신이 찬하여 세웠는데 임진왜란 때 파손되었던 것을 1962년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중건하였다. 지금의 비는 1984년에 다시 조성된 것이다. 비문은 1581년 처음 신도비가 세워질 때 노수신이 지은 것으로 이준경의 약력과 분당에 관한 우려 등 그와 관련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