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이춘영 묘


□ 소  재 지 : 양동면 석곡리 산97-2
□ 시      대 : 조선 후기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18호
 
   양동역에서 328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700m 정도 가면 석곡2리로 가는 마을도로가 있다. 이 도로는 다시 윗목골과 아랫목골로 가는 길로 나뉘는데,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아랫목골이 나온다. 의병장 이춘영의 묘는 이 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야산의 끝자락에 조성되어 있다.
   이춘영(李春永, 1869~1896)은 조선 말기의 의병장으로 자는 우삼(友參), 호는 괴은(槐隱)이고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동향인(同鄕人)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당시 지평감역(砥平監役)으로 있던 맹영재(孟英在)를 포섭하여 거의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자, 그 부하 김백선(金伯先)을 설득하여 그의 휘하에 있던 400여 명의 관군을 포섭하여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원주(原州) ․ 단양(丹陽) ․ 청풍(淸風) ․ 충주(忠州)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여 명성을 떨쳤다. 이후 풍기(豊基)로 진군하다가 친척인 이민옥(李敏玉)의 배신으로 관군의 기습을 받고 패전하였다. 그 뒤 부대를 수습해 충주로 이동하여 유인석(柳麟錫)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활동하였다. 조령(鳥嶺), 달천(達川), 안보(安保) 등지에서 관군과 일본군 탐관오리들을 격파하였으나 1896년 충주싸움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추서되었다.
   묘는 남서쪽을 향해 있으며, 중앙에는 상석이 있고, 상석 오른쪽에 묘비가 있다. 묘비(높이 117cm, 폭 41cm, 두께 17cm)는 1970년에 건립된 것으로 재료는 대리석이며, 전면에는 한글로 “우삼 이춘영 묘”라고 음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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