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길선생 묘 및 신도비

 □ 소  재 지 : 용문면 조현리 산30-1
 □ 시      대 : 신도비-1973년 건립
 □ 지정사항 : 양평군 향토유적 제27호
 
   용문면소재지에서 북동쪽 용문사 방향으로 5km 정도 가면 조현초등학교에 이르는데, 초등학교 뒷길을 따라 약 1km 정도 가면 조현리 막동골마을에 이른다. 윤승길 묘는 이 마을의 북쪽 산록에 조성되어 있다.
   윤승길(尹承吉, 1540~161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일(子一), 호는 남악(南岳),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의 아들이다.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 장령(掌令)등을 역임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귀성부사(龜城府使)로서 병사모집과 군량미 조달 등에 공을 세웠다. 이듬해 충청도 관찰사에 있을 때는 전란에 시달려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고 장정을 뽑아 기효신법(紀效新法)으로 훈련을 시켜 명나라 지휘관으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았다. 이어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1600년(선조 33) 형조판서 겸 도총관에 올랐고, 같은 해 자신의 딸을 선조의 일곱째 아들인 인성군(仁城君)과 혼인시켰다. 한성부우윤, 좌참찬을 역임하고 1605년(선조 38) 선무원중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1609년(광해군 1) 해선군(海善君)에 봉해졌다. 1616년(광해군 8) 세상을 떠나자 조정에서는 예관과 조관을 보내 장례를 치렀다. 시호는 숙간(肅簡)이다.
   묘는 정부인 금성박씨와 합장묘로 봉분 하단에 40cm 높이의 호석이 돌려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전체높이 165cm, 폭, 59cm, 폭 59cm, 두께 20cm)와 상석, 향로석, 그 좌우에는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배치되었다. 묘비는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묘비의 전면에는 “資憲大夫 議政府左參贊兼知春秋館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贈謚□公尹承吉之墓 貞夫人 錦城朴氏祔?”라고 기록되어 있다.
   묘소에는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신도비(높이 176cm, 폭 62cm, 두께 36cm)는 1973년 3월에 건립한 것으로 팔작지붕형의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신도비문은 병조참판 이서우(李瑞雨)가 지었고, 윤미로(尹未老), 윤희섭(尹曦燮), 윤체섭(尹涕燮), 윤정로(尹正老), 윤인영(尹仁榮), 윤창섭(尹昌燮), 윤백영(尹栢榮), 윤동섭(尹東燮), 윤의로(尹義老), 윤경섭(尹敬燮), 윤중진(尹重鎭), 윤성로(尹星老), 윤기화(尹跂?) 등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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