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열 묘


 □ 소 재 지 : 강하면 세월리 산7
 □ 시     대 : 조선 후기
 
   강상면소재지에서 44번 도로를 따라 5.5km 가면 세월리 노인회관이 나온다. 노인회관 왼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로 200m 정도 가다보면 도로변 왼쪽에 심열 신도비가 나온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약 50m 가면 나지막한 구릉에 청송김씨 문중묘역이 나오는데, 심열 묘는 묘역 중앙에 위치한다.
   심 열(沈悅, 1569~1646)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학이(學而), 호는 남파(南坡)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병조판서 심충겸(沈忠謙)의 아들로, 성천부사 심예겸(沈禮謙)에게 입양되었으며, 중종의 아들인 봉성군(鳳城君) 이완(李岏)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1593년(선조 26)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요직을 역임하고, 경기도 ․ 황해도 ․ 경상도 ․ 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1623년(인조 즉위년)에 호조판서로 승진하였으며 그 뒤 강화부유수를 거쳐, 1643년(인조 21)에는 영의정에 이르렀다. 관직에 있는 동안 특히 재정에 대한 뛰어난 경륜으로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저서로 『남파상국집(南坡相國集)』 6권이 있다.
   심열의 묘는 좌측에 정경부인 기계 유씨의 묘가 있고, 뒤쪽에 의령 남씨의 묘가 앞의 두 묘를 에워싸듯이 배치되어있어 ‘·.·’ 형태의 특이한 배치 형태를 하고 있다. 중간에는 월두형의 묘비(전체높이 173 cm, 폭 124.5cm, 두께 19cm)가 비좌와 비신을 갖추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상석, 향로석, 망주석과 문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 앞면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兼領經筳弘文館 藝文館春秋館觀象監世子師 贈益沈公之墓 贈貞敬夫人宜寧南氏祔公之左 貞敬夫人杞溪愈氏祔公之左”라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관련유적으로 심열 묘 바로 뒤로 부친인 심예겸의 묘가 있으며, 동쪽으로 50m 떨어진 거리에 심 열의 손자 심 권의 묘가 있다. 또한 옥천면 아신리에는 심 열의 생부인 신충겸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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